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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法王의 정치와 불교

The Politics and Buddihism during King Pŏp(法王) in Baekje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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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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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法王은 할아버지 聖王이 신라 眞興王에게 패해 사망했던 관산성 전투가 벌어진 시기에 태어나, 큰아버지 威德王의 좌절과 불교를 통한 극복 의지를 보며 유년 시기를 보냈다. 백제의 시련 속에서 국제 관계와 함께 능산리사원과 王興寺 지역의 불교사원 건립이라는 불교를 통한 정치 이데올로기 강화 작업도 강한 인상을 가지고 지켜보았을 것이다. 중국에서 隋가 등장하여 남북조를 통일하고 그 힘이 고구려를 비롯한 한반도 지역으로 뻗쳐 오는 급박한 국제 정세 속에서 백제 외교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장년이 된 야심찬 법왕은 본인이 이 변혁기의 중심에 뛰어들어 백제의 면모를 일신하려고 하였다. 위덕왕 말년인 598년에 隋와의 국제 외교를 통해 고구려를 견제하고자 했으나 실패하여 오히려 고구려의 반격을 받은 사건은 변혁기의 복잡한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건으로, 이것이 법왕 즉위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수와의 외교와 고구려와의 전쟁에 주도적으로 대처하였을 법왕은 위덕왕의 조카였으므로 직접 다음 왕위를 바라볼 수 없었다. 이에 그는 왕자 阿佐를 왜로 보낸 뒤 자신의 아버지이자 위덕왕의 동생이었던 고령의 惠王을 즉위시킨 후 다음 왕위를 전망하였다. 결국 1년 만에 아버지 혜왕이 죽고 법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그동안 생각해왔던 백제의 변혁을 위해 불교를 이용한 과감한 시책을 정력적으로 벌였다. 하지만 너무 과감했던 정책은 결국 그도 1년 만에 단명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Abstract

Baekje King Pŏp(法王) was born, during the battle of Gwansanseong Fortress that Grandfather King Sŏng(聖王) was defeated by Silla King Jinheung. And he spent his childhood watching his elder uncle King Witŏk(威德王)’s frustration and will through Buddhism. During hardship of Baekje, King Pŏp would have felt an impression about King Witŏk(威德王)’s politic of international relations and strengthen political ideology through the Buddhism of the construction of the wooden pagoda in Neungsanri temple and Wangheungsa Temple. In the emergence of Sui in China and their unification of the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and cause of their power could reach Goguryeo and other parts of the Korean peninsula, there should have been deep concerns about the direction of Baekje diplomacy. In this situation, the ambitious King Pŏp(法王), who became an elder year, jumped to the center of this transformation period and tried to renew the aspect of Baekje. In 598, the last year of King Witŏk(威德王), he tried to check Goguryeo through international diplomacy with Sui. However, the incident that was counterattacked by Goguryeo was an event that showed the complicated aspect of the transformation. King Pŏp(法王), who would have been a leader in the war against Sui and the war against Goguryeo, was a nephew of King Witŏk(威德王), so he could not succeeded directly to the next throne. After he had sent prince Ajua(阿佐) to japan, he anticipated the next throne after he ascended the elderly King Hye(惠王), who was father of King Pŏp and brother of King Witŏk(威德王). Eventually, in one year, his father King Hye(惠王) died, and King Pŏp(法王) was succeeded to a throne. He energetically made bold measures using Buddhism to transform Baekje, which he had been thinking for years. But a policy was too bold and that has resulted in him becoming short-lived in a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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