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중외일보』 기자 시기 언론 활동과 고향 상실의 문학적 모티프
Yi Yuk-sa’s Media activities as a reporter of “Jungwae Ilbo” and Literary motif of loss of home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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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7월 대구 팔공산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초유의 수해 참상을 보도한 『중외일보』 기사들은 이육사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시기 이육사의 언론 활동과 사회의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이육사는 수해 참상의 보도기사에서 수해에 대한 단순한 사실 보도를 넘어 삶의 터전을 잃고 처참한 상황에 내몰린 농민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처지에 놓였는지를 문학적 언어를 동원해 절실하고 생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인간애를 깊이 드러내었다. 이육사가 본격적으로 문학 창작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30년대 중반 이후인데, 그의 작품에 두드러진 고향 상실의 모티프는 바로 수해 참상에 대한 그의 원체험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었다. 그것은 큰물로 인해 황폐화한 고향을 벗어나 일거리와 생활을 찾아 영원히 길을 떠나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유령’의 꿈을 통해 서술한 「황엽전(黃葉箋)」이나, 무릉도원처럼 정겹고 평화로운 산간 마을이 큰물로 인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한 뒤 마을 사람들의 처참한 생활상을 묘사한 「초가(草家)」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이육사 문학의 고향 상실의 모티프가 관념이나 이념으로부터 촉발된 것이 아니라 실체적 경험으로부터 유래된 것임을 시사한다. 이육사의 시가 강한 사상성(思想性)을 띠면서도 깊은 호소력을 지닌 것은 바로 고향 상실의 모티프에서 보듯이 시상(詩想) 전개가 관념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삶에 대한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해 참상을 통해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참혹한지를 체험한 이육사로서는 그것을 일제 지배하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유비(類比)로 표현한 것이다. 이육사의 시는 황폐화한 우리의 삶의 양태와 더불어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의지를 시상(詩想)으로 전개하고 있어 저항의 힘으로 전화(轉化)되며, 결과적으로 그것은 우리의 삶을 ‘사상화(思想化)’한 것이다.
Abstract
The newspaper reports of the Jungwae Ilbo, which reported the unprecedented flood damage in the Palgongsan Mountain area in Daegu in July 1930, are believed to have been written by Yi Yuk-sa, and provide important data for Yi Yuk-sa’s media activities and his social consciousness during that period. In that newspaper reports on flood damage, Yi Yuk-sa deeply expressed sympathy and compassion for them by mobilizing literary language to describe how painful and desperate farmers were in a desperate situation after losing their homes. It was after the mid-1930s that Yi Yuk-sa entered the path of literary creation in earnest, and the motif of loss of hometown, which was prominent in his work, was closely related to his original experience of flood damage. This suggests that the motif of loss of hometown, which stands out in Yi Yuk-sa literature, was not triggered by ideas or ideologies, but was acquired from substantive experiences. The reason why Yi Yuk-sa’s poem has deep appeal is that, as seen in the motif of loss of his hometown, the poetry is based on his experience of concrete life, not just an idea. Moreover, Yi Yuk-sa, who experienced how painful and devastating it was to lose his home due to flood damage, expressed it as a metaphor for the colonial reality under Japanese rule. Yi Yuk-sa’s poetry develops the devastated aspect of our life, persistent vitality, and strong will in the form of poetry, turning it into a force of resistance.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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