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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시각화 기술 기반 재일본 조선 유학생 사회 타임라인(2)

Timeline of the society of Joseon students studying abroad in Japan based on map visualization technolog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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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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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재일본조선인유학생이 발간한 근대 초기 잡지를 대상으로 판권장·회원명부 등에 제시된 주소지 정보를 활용하여 지도작성기술을 사용해 장소 정보를 시각화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1890년대 후반 발간된 『친목회회보』와, 1906년부터 1910년 합방 이전까지 발간된 『태극학보』를 비롯 『대한흥학보』까지 총 8종의 잡지에서 제공하는 주소 정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시각화하여, 도쿄를 중심으로 유학생 활동의 기반이 된 지역·장소·장소성의 변화과정을 파악하였다. 1895년부터 1898년까지 발행된 『친목회회보』는 200여개의 상세주소를 제시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회원의 거주지뿐만 아니라 게이오의숙을 비롯 도쿄 각지의 주요 교육기관의 주소가 포함된다. 1890년대 중후반은 게이오의숙과 후쿠자와 유키치, 박영효를 비롯한 망명가 세력, 의화군이 모여있던 시바구와 아자부구를 중심으로 유학생 사회가 형성된다. 1890년대 중후반의 유학생사회 지도가 도쿄 궁성을 기준으로 남쪽에 중심지를 두고 점차 넓게 확대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면, 1900년대 초부터 합방 이전까지는 유학생감독부가 있던 고지마치구를 중심으로 밀도 높게 응집된 모습을 띠고 있다. 1906년 이후 고지마치구에 있는 유학생 감독부는 유학생의 무대가 된다. 국가기념일, 유학생추도회와 같은 행사뿐 아니라 고학생동맹, 학회운동, 연합단체 결성운동이 감독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 글에서는 유학생 단체가 생겨나고, 없어지고, 수렴하고, 분기하는 과정을 포함하여,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한기독청년회를 함께 파악하고자 했다. 대한기독청년회는 유학생을 동화하고 흡수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인다. 이 과정에서 1차 연합 당시 태극학회의 이탈은 기독청년회라는 기반을 두고 연합단체 내부에서 모종의 갈등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간다구에 있던 기독청년회와 고지마치구에 있던 유학생감독부 사이의 길항성이 보이며 이러한 운동이 유학생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편되어 나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was to collect address information presented in copyright notices, membership lists, etc. of early modern magazines published by Korean students studying in Japan, and to visualize location information using mapping technology. Address information data provided by a total of eight magazines, including Chin-mog-hoe-hoe-bo(친목회회보) published in the late 1890s, Tae-geuk- hak-bo(태극학보) published from 1906 to Dae-han-heung-hak-bo(대한흥학보) published before the annexation in 1910 were collected and visualized. This article grasp the foundational areas, locations, and the evolving process of the spatial characteristics of Korean students’ activities centered around Tokyo. The Chin-mog-hoe-hoe-bo published from 1895 to 1898 provides detailed addresses for over 200 locations, offering not only the members’ residential addresses but also the addresses of major educational institutions in various parts of Tokyo. In the mid-to-late 1890s, a society of international students was formed centered around Shiba-gu and Azabu-gu, where the Keio Uisuk, Fukuzawa Yukichi, Park Yeong-hyo and other exiles were gathered. In comparison to the map of the Korean student society in the mid-to-late 1890s, which was centered around the southern area as its focal point and gradually expanding, from the early 1900s until before the annexation, the residences were densely concentrated around the district of Kojimachi-gu, where the Korean Student Supervision Bureau(유학생감독부) was located. The prestige of student supervisors fell significantly due to the mock National Assembly incident in 1907(모의국회사건), and the Korean Student Supervision Bureau became a stage for students not supervisor. Not only events such as national anniversaries and international student memorial services, but also high school student alliances, academic movements, and joint group formation movements were centered around the Korean Student Supervision Bureau. Particularly in this article, the focus is placed on understan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tudent collective movements and the YMCA. The YMCA consistently devoted efforts to assimilate and absorb Korean students. The departure of Tae-guk-hak-hoe during the first collective movement indicates internal conflicts within the collective organization, founded on the basis of the YMCA. There appears to be antagonism between the YMCA in Kanda-gu and Korean Student Supervision Bureau in Koji-machi-gu, and it is necessary to check how this relationship is reorganized in the student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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