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원성왕 ‘즉위 설화’의 역사학적 고찰 -꿈과 해몽의 정치적 상징조작-
A historical study of the story of the enthronement of King Wonseong in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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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원성왕 ‘즉위 설화’에 내포되어 있는 정치사적 의미를 탐구한 것이다. 신라 下代의 실질적 開創者인 원성왕(재위 785~798) 김경신은 무혈 쿠데타를 통해 왕위에 올랐다. 785년 1월 선덕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群臣 회의에서 김주원이 신왕으로 추대되었다. 北川(알천) 너머에 살던 김주원이 왕궁으로 향하던 때에 마침 냇물이 불어나 북천을 건너지 못하였다. 그 사이에 衆議는 김경신에게 기울어 그를 왕으로 세웠다고 한다. 『삼국사기』는 알천 물이 불어난 것을 때마침 큰비가 내린(大雨 閼川水漲) 때문이라 서술하였다. 『삼국유사』는 왕위가 뒤바뀐 이유를 갑자기 불어난 냇물(忽川漲)로 설명하면서도 비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선덕왕 재위 시절 김경신이 꾸었다고 하는 흥미로운 꿈 이야기가 실려 전한다. 꿈 속에서 그는 두건을 벗고 흰 갓을 썼으며, 12현금을 갖고, 天官寺 우물에 들어갔다. 깨어나 점을 쳤더니 관직을 잃고, 칼을 쓰고, 옥에 갇힐 징조라 하였다. 근심으로 두문불출하는 김경신에게 여삼이라는 귀족이 찾아와서 새로 해몽을 해주었다. 면류관을 쓰고, 12세손에게 왕위가 전해지며, 궁궐로 들어갈 상서로운 꿈이라는 것이다. 여삼은 또 김경신이 김주원을 이길 수 있는 방책으로 북천신 비밀 제사(密祀北川神)를 건의하였고, 경신은 이에 따랐다. 좋은 꿈의 응험으로 김경신은 결국 왕이 되었다. 『삼국유사』 所載 김경신의 ‘꿈’ 설화는 『삼국사기』의 ‘큰비’ 기사에 비해 언뜻 비합리적 인이야기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큰비(폭우)는 승자의 권력을 天命으로 수식하려는 유교적 修史로 해석해야 한다. 오히려 ‘갑작스런 냇물의 벌창’ 앞에 ‘꿈과 해몽’ ‘북천신 비밀 제사’를 前文으로 실어 놓은 『삼국유사』 쪽이 그 역사적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전해주는 것 같다. 김경신은 왕위 계승 서열상 上位에 있던 무열왕계의 김주원을 제압하기 위하여 사전에 치밀한 쿠데타를 계획했던 것이다. 무혈 정변으로 종결된 이 쿠데타가 북천 냇물의 벌창과 김주원 ‘不得渡(건너지 못하였다)’로 상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김경신의 즉위는 하늘(天)의 뜻에 의한 것으로도 北川의 神力에 의한 것으로도 꾸며질 수 있지만, 『삼국유사』의 설화는 북천신의 조력이 사실은 김경신 측의 인위적 노력이라는 것을 더 구체화하여 알려준다는 점에 그 사료적 의의가 있다. 방계 왕족 김경신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새로이 ‘나물왕 12세손’을 표방하였다. 여러 자료에서 원성왕 김경신의 治水에 대한 관심과 水神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는 북천 쿠데타를 합리화하고 자신의 왕권을 후대에까지 영속화하려 했던 정치적 상징조작의 소산으로 이해된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story of the enthronement of King Wonseong(Kim Gyeong-shin) in 『Samguk Yusa』(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by historical method. King Wonseong (785~798) ascended to the throne through a kind of bloodless coup. In January 785, when King Seondeok died without a heir, Kim Joo-won was elected as the new king at the nobles' meeting. When Kim Joo-won, who lived beyond the Northern River(Bukcheon), headed to the royal palace, he couldn't cross the Bukcheon stream due to a large stream. Meanwhile, the official inclined to Kim Gyeong-shin and made him king. 『Samguk Sagi』(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describes the increase in the water of Alcheon(Bukcheon) as the result of heavy rain. In 『Samguk Yusa』 also described the reason why Kim Joo-won could not become king, it was a sudden flooding of the Bukcheon stream, but there is no mention of rain. Instead, there is an interesting dream story that Kim Gyeongshin had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deok. Kim Gyeong-shin's dream is full of various signs and symbols. It vividly reflects the historical reality of defeating strong rival Kim Joo-won and ascending to the throne with his skills. In this paper, the creation of such a “dream story” and “the imperial story” was interpreted as a political act of symbol manipulation on the part of Kim Gyeong-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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