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추의 활동과 14세기말 동아시아 政勢
Nagach's Activities and the East Asian Situation at the End of the 14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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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368년에 토곤 테무르 칸이 大都를 포기하고 북상하면서 원의 요동 통치기구였던 遼陽行省은 明과 맞서는 北元의 중요한 교두보로써의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그러나 劉益이 명에 갑자기 투항함에 따라, 요양행성을 상실한 북원은 통치의 중심을 카라코롬 지역으로 옮기고 몽골세력을 결집해 명에 대한 총공격을 준비해 나갔다. 또한 요양행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원의 잔여세력들이 나가추 휘하로 들어가면서 20만호에 육박하는 거대 세력을 형성한 나가추는 만주 최대의 군벌로 성장했고, 그의 활동이 14세기 말 요동의 정치변화에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나가추는 1372년에 명군의 요동 전초기지인 牛家庄을 공격해 명의 요동 보급로를 차단시켜서 명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1375년의 요동 회복을 위한 대규모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나가추는 고려와 연합 작전을 통해 요동을 공격하려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군사기반을 상실한 나가추도 밀려오는 명군에 대항하지 못하고 명에 투항하게 되는데, 그의 투항을 계기로 만주지역에서는 대규모의 투항 도미노 현상이 나타났다. 그의 투항은 북원의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켰으며, 요동의 군사거점을 상실케 해서 이후 토구스 테무르 정권의 소멸을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나가추의 투항으로 몽골 전체가 동요되고 있던 상황에서 1388년 4월에 명군의 급습을 받은 토구스 테무르 정권은 궤멸될 수밖에 없었다. 토구스 테무르의 패배와 사망으로 명과 대치해 남북조정권을 형성했던 북원 세력이 사실상 소멸됐다. 요동지역의 거대세력인 옷치긴왕가 최후의 요왕 아자스리도 나가추의 항복과 토구스 테무르정권의 궤멸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결국 북원정권의 궤멸과 더불어 몽골지배계층의 투항 도미노까지 겹치게 되자, 아자스리는 明정권으로부터 울루스의 독립적 경영을 확보한 뒤 1388년 11월에 明에 항복했다. 고려는 동아시아의 패자가 교체되는 14세기 말, 明과 北元 사이의 중립적 외교 전략을 구사하며 이중 외교노선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明정권과 고려 사이의 완충작용을 했던 나가추가 1387년에 明정권에 투항하자, 고려는 마침내 明정권의 군사적 침략의 직접적 위협에 직면하게 됐다. 요동을 장악하는데 방해가 됐던 나가추가 투항하자 명은 한층 강화된 요동 공략을 꾀하게 되고 그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철령위를 설치하려 했다. 나가추의 투항은 나가추 세력에 의지해 북변의 안정을 유지하던 고려에게 막중한 타격을 줬다. 주원장의 高麗 정책은 다분히 나가추 세력의 견제와 공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가추의 투항으로, 명의 고려에 대한 유화정책은 나가추의 항복과 더불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고려․북원․명의 팽팽한 삼각균형관계를 유지하던 동아시아는 나가추의 투항으로 명정권이 주도하는 체제로 급속하게 질서를 개편해 나가게 되었다.
Abstract
In 1368, Qan of Togon Temür gave up large town and moved northward so that Liaoyangxingsheng(遼陽行省) that was government organization of Liaodong of the Yuan could play role of an important bridgehead of the North Yuan enough to fight against the Ming. When Yu Yi(劉益) suddenly surrendered to the Ming, the North Yuan that lost Liaoyangxingsheng moved its governmental center to Qara Qorom to concentrate all of powers and to prepare for all-out offensive against the Ming. And, remaining power of the Yuan that took active part in Liaoyangxingsheng surrendered to Nagachü to form a gigantic power near 200,000 and to be the largest militarists in Manchuria, and its activity became an important variable of political change at Liaodong at the end of the 14th century. In 1372, Nagachü attacked Niugajiang(牛家庄), Liaodong outpost of the Ming's military force to block the Ming's supply route to Liaodong and to give a fatal damage to the Ming's military force. In 1375, however, Nagachü failed in massive attack for recovery of Liaodong, and he sought after new breakthrough to attack Liaodong by combined operations with Koryo. Nagachü who lost military base could not fight against the Ming's military force and finally surrendered to the Ming: After Nagachü's surrender, domino phenomenon of large-scaled surrender occurred in Manchuria. Nagachü's surrender weakened North Yuan's military force greatly to lose Liaodong's military base and to terminate Togon Temür regime. Nagachü's surrender disturbed all of Mongolia and Togus Temür regime that was attacked by the Ming's military force in April 1388 was forced to be destroyed. Togus Temür's defeat and death actually terminated the North Yuan's power that established Southern-Northen Dynasties against the Ming Dynasty. Not only Nagachü's surrender but also Togus Temür regime's collapse caused severe damage to last Liaowang(遼王) of Ajasri of Otchigin Family that was gigantic power at Laodong. At last, the North Yuan regime was destroyed to let the Mongolian ruling class surrender continuously so that Ajasri also got independent management of Ulus from the Ming regime to surrender to the Ming in November 1388. At the end of the 14th century when the ruler in East Asia was replaced, the Koryo Dynasty used neutral diplomatic strategies between the Ming and the North Yuan to adopt dual diplomatic line. When Nagachü who played a bumper role between the Ming regime and the Koryo Dynasty surrendered to the Ming regime in 1387, the Koryo Dynasty was given direct threat from the Ming regime. Nagachü who prevented occupation of Liaodong surrendered to the Ming so that the Ming could reinforce attack to Liaodong to establish Tielingyi. Nagachü's surrender caused severe damage to the Koryo Dynasty that could keep balance at the northern border by relying upon Nagachü. Ju Won-jang adopted policy toward the Koryo Dynasty by check and attack against Nagachü power. The Ming gave up soft-line policy toward the Koryo Dynasty after Nagachü's surrender. East Asia that kept balance among the Koryo Dynasty, the North Yuan and the Ming was quickly reorganized to let the Ming take the lead after Nagachü's surr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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