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후엽~6세기 전엽경 백제 죽막동제사에 왜양식 제의가 포함된 배경
Background of the Appearance of Wa-Style Religious Services at the Baekje ' s Chungmakdong Ritual Site in the late 5th and early 6th Centu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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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5세기 후엽~6세기 전엽경 백제의 죽막동제사유적에서는 왜양식 제의가 포함된 정황이 발견되었다. 죽막동제사유적에서의 제의 활동 강화는 이 시기 백제 서해안 항로에서의 안전 확보가 중요한 과제였음을 시사한다. 백제의 서울지역 수도가 함락되는 등 고구려의 공격이 더욱강화된 상황에서 서해안항로를 통한 전쟁물자와 국제적인 교역품의 안전한 운송은 백제의 국가적 과제였다. 특히 백제의 경우, 고구려와의 전쟁 비용‧물자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왜와의해상교역은 매우 중요하였다. 백제에서 생산된 철 등 전략물자와 장식 환두대도, 금 귀걸이 등은 특히 왜에게 필요한 물품들이었다. 백제는 이러한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왜 사신‧상인들을 우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시기 죽막동제사에서는 중국 남조양식 제의와 가야양식 제의도 왜양식 제의와 더불어 거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 확실하게 인정되는 외국양식 제의는 소형석제모조품을 헌공하는 왜양식 제의가 유일하다. 왜인들이 백제의 국가적인 제사 장소에서 왜양식 제의를 거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백제 측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양국이 합동으로 죽막동제사를거행하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고구려를 포함한 주변국에게 백제와 왜 사이의 긴밀한 외교적연대를 과시하기 위한 연출된 행위였다고 추정된다. 죽막동제사에 왜양식 제의가 추가된 또 하나의 배경은 백제와의 외교적 연대 강화를 목표로하는 왜의 새로운 정치‧경제적인 전략 수립이다. 고구려의 대규모 침공으로 교역의 중심축역할을 상실한 금관가야를 대체할 새로운 교역 중심축을 확보해야하는 것이 왜의 최우선과제였다. 5세기 전엽 이후, 왜가 백제로 향하는 해상항로에 위치하는 아라가야, 소가야, 대가야등 가야서부지역 정치체들과의 교역‧교류를 강화한 것도 이러한 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한선결과제였기 때문이다. 6세기 전엽 무령왕 시기가 되면, 왜인들의 죽막동제사 참여와 더불어 백제 서남부지역 일부수장묘에 왜양식 전방후원분이 채용되는 현상이 함께 등장한다. 이것은 전방후원분이 아닌원통형토기라는 왜 무덤양식을 채용하던 5세기 후엽 단계에 비하여 양국 간의 상호 신뢰가증가되었음을 시사한다. 백제와 왜에서 새롭게 정권을 잡은 무령왕과 게이타이(繼體)왕 사이의 개별적인 정치적 신뢰감도 매우 높았음을 의미한다. 고구려의 남하정책 저지라는 이들의전략적 목표와 더불어 상호 신뢰감이 이 시기 백제의 친왜정책 강화를 유도한 것으로 볼 수있다.
Abstract
During the late 5th century to theearly 6th century, Wa-style religious services were held at the Baekje's Chungmakdong ritual site. Therecognition of the participation of theJapanesein Baekje's national religious services symbolizes the close political solidarity between the two countries. During the war with Goguryeo, Baekje's most important task was to ensure the safety of the west coast route. In particular, Baekje needed to strengthen maritime trade with Wa in order to secure the necessary costs for carrying out the war with Goguryeo. The two countries staged joint religious services to show off their close diplomatic solidarity to Goguryeo. Built in the southwestern area of Baekje in the early 6th century, the keyhole tombs symbolizes the close diplomatic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Wa, which was strengthened during this period. These actions are believed to have been intentional to prevent Goguryeo's attack. The deep ties between King Muryeong and Keitai administration also seem to have been an important factor in close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during this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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