再思堂 李黿의 生涯와 詩世界
Life History and Poetry Characteristics ofJae-Sa-Dang Wo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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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재사당(再思堂) 이원(李 ?~1504)은 김종직의 문인으로서 비극적인 생애를 보내면서도 시인으로서 문학사적 가치를 지닌 시들을 남겼다.김종직의 시호를 청하는 계를 올린 죄로 파직된 후 금강산을 유람하고 기행문과 시를 창작하였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로 유배되었다가 갑자사화에 사형을 당했으나 유학자로서의 처신과 문학은 후대에까지 높이 평가되고 있다.파직, 유배, 사형의 상황 속에서도 재사당은 자신의 유가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시 속에 표현하고 있다. 파직 중에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읊은 시들에서도 임금에 대한 충성심이나 불교에 대한 비판과 같은 유가적 이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배 중에 창작한 述志賦나 無題와 같은 시는 자신의 충성심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재사당은 시 속에는 성리학적 사유가 반영되어 있다. 산수자연에 담겨 있는 만물의 이치(理致) 즉 도리(道理)를 궁구(窮究)하여 파악하고 체득하는 것을 금강산 유람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시로 표현하였다. 初春感興二絶과 같은 작품은 천지 생성과 우주 운행의 원리에 대한 성리학적 이론을 시로 직접 표현한 대표작이다.금강산 유람의 시에는 탈속의 자연을 유람하는 흥취를 표출한 작품들도 있는데 山中辭는 그러한 내용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금강산 유람의 시에는 도가적 신선의 세계를 동경하는 일탈적 심경을 표출한 것들도 있다.유가적 이념에 기반을 둔 성리학자로서 사화에 의해 희생된 재사당의 생애와 시세계는 조선전기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의 관료, 문인의 처신과 시적 표현의 한 특징적인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Abstract
In this review, life span and poetry characteristics of Jae-Sa-Dang, Won Lee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he intended to manifest his consistent emotional and philosophical attitudes of Confucianism in his writings. Even in his expelled exile period traveling along the Mt. Keum-Kang area, he expressed poetic rhymes of loyalty toward his King but criticism on the Buddhism, which can be interpreted as a typical theme of Confucianism world. During a detention period at the aftermath of Mu-So political revenge conflict, he also consistently expressed the idea of Confucianism world, by delivering his un-retractable loyalty toward his respecting dynasty, in his most prominent poems such as Sul-Je-Jeok(述志賦) and Mu-Je(無題). Second, he also delineated another emotional and philosophical attitudes of Naturalism in his writings. During the exile period at the Mt. Keum-Kang area, he also expressed poetic rhymes of hermit entity absorbed in pastoral life style free from human agony community. In his naturalistic poetry, he explored cosmic world of genesis of universe and nature.
참고문헌 (11)
- 최재남, "장육당과 육가계 시조" (1983)
- 최재남, "士林의 鄕村生活과 詩歌文學" (1997), 국학자료원
- 李, "再思堂先生逸集"
- 李文熙, "國譯 再思堂先生逸集" (1983)
- "정염(丁焰 1524-1609)은 자는 군회(君晦)이며 호 만헌(晩軒)으로 명종(明宗) 15년(1560) 경신(庚申) 별시(別試) 을과(乙科)에 급제하여 예조정랑, 광주목사 역임를 역임했다. 문집으로 ??晩軒集??이 있다"
- 李端相, "??靜觀齋先生集?? 권9. ?答宋尤齋? “……曾見薛文淸讀書錄 解物格知至曰 物格 是逐物逐事上窮至其理 知至 是萬物萬事上心通其理 格物 猶是物各爲一理 知至則知萬物爲一理云云 其後代藩朱俊? 爲致良知之學 亦著讀書錄 解物格曰 似物來歸格之狀 以來格訓之 亦可云云 而此兩解 皆不出退溪先生以下諸說所論 故?不別議其得失耳 本朝再思堂李公? 嘗著格物物格說而今不傳 不知?畢門中所傳授者果如何否耳…….”"
- "조선왕조실록"
- 南孝溫, "李? 字浪翁 慶州人 益齋之後 朴彭年之外孫 兩家之賢 萃于一人 其氣像堂堂 可以托六尺之孤"
- 金尙憲, "先生天資豪邁絶倫 文章氣節 言論風采 卓然世所傾仰 少師畢齋 一時名儒 皆在門下 相與砥礪講? 士林推爲國器 志業未究而禍及之 平生嗜書 博觀諸書 惟不讀非聖之書 嘗游金剛山 力破流傳記異之說 杜妄言惑衆者口 而折之以正理 答問伏面壁僧 因著格物物格說以曉之 後來諸儒賢 互見取衷之論 實相暗合云 文章峻潔如其人 詩甚高 雖在捐佩之際 絶無哀傷怨?之辭 所著述放逸不收 述志賦行於世 濯纓於文 少推讓 而見先生金剛錄曰 無以過也 ……"
- 再思堂先生逸集, "日暮至摩訶衍 僧八九輩 面壁趺坐 橫尺木於頭? 以驗其眠 木落則以白板警其惰 終日危坐 若有所思 余問之曰 所思何事 座首僧曰 思趙州之無字 余應之曰 釋之見性思無 猶吾道之性與天道也 性與天道 聖人所罕言 豈庸夫凡類之所與知乎 師何不敎之以易知可行之事 而勉人以高遠難知之事乎 無乃欲其入而閉門者乎 僧不答 旣而問於余曰 君之目 覩萬物乎 萬物入君之目乎 余答曰 目亦覩萬物 萬物亦入目 何也 觀物而窮理 窮理而物不遺 此吾道所謂格物致知 物格知至者也 僧亦不答"
- 再思堂先生逸集, "嘗取癸丑遊金剛山錄觀之 山多古蹟流傳之說 往往惑人者有之 公吟風縱筆 形於聲?之餘 一事一物之微 必求諸理而證其荒誕焉 有僧面壁趺坐問於公曰 君之目覩萬物乎 萬物入君之目乎 公答曰 目亦覩萬物 萬物亦入目 何也 觀物而窮理 窮理而物不遺 此吾道所謂格物致知物格知至者也 僧不答 蓋彼以惡物之心 而物不能絶 故有是問 此以窮物之理 而物不可遺 故以是答 宜其言之有以服其心也 因記格物物格之說"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