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서클운동의 정치성과 자이니치의 아이덴티티 -1950년대 서클지 『진달래』의 성격과 그 의의-
The Politics of Culture Circle Movementand the Identity of Korean Japanese -The Characteristics of Jindalle and it’s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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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진달래』는 북한의 체제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1950년대 오사카 지역의 서클지이다. 김시종이 중심이었고, 노동자, 학생, 병인 등 지역사회의 자이니치들이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들은 일본 사회에서 ‘유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2세로서 조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며 모국어에도 서툴렀다. ‘조국’은 이상화 되어갔고, ‘조국’을 위한 일본 사회 내부에서의 극좌적 투쟁이 자이니치에게 강요되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조국과 투옥된 활동가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시 쓰기에도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김시종은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자이니치 자신의 실존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오노 도자부로 등 외부의 일본 작가들의 권위에 호소하면서 이 기조를 강화해갔다. 수소폭탄 문제는 그 과정에서 중요한 절충적 과제가 되었다. 오사카의 ‘장소성’, 외국인등록증 및 복지 면에서의 차별, 절대적 빈곤 등도 잇따라 이슈가 되었다. 『진달래』의 활동은 서클지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애초 정치적 맥락에 ‘동원된 존재’였지만, 합평회, 연구회, 간담회 등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아갔다. 그들은 이 모임에서 ‘안심감’을 경험했으며, 이 모임을 자신들의 ‘거장소(居場所)’로서 인식했다. 『진달래』논쟁은 ‘육전협’ 이후 노선전환으로 생긴 조총련의 간섭에서 자신들의 매체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성격이 있었다.
Abstract
At first Jindalle[『ヂンダレ』] was a circle magazine to propagate the legitimacy of North Korean regime. Kim Si-jong was the central figure. Workers, students, and patients in Korean Japanese community of Osaka gathered around him. They were living as a drifting people in Japan. They were almost the second-generation Korean Japanese, and they could not use well their mother tongue. At the time, North Korea was promoting an ideal place in Korean Japanese community. The Korean Japanese have required the extreme left struggle for their father’s country. They felt inferior compared to North Korea and activist in jail. And for that very reason, they felt the burden in writing. Kim Si-jong thought that it was important to write the specialty of Korean Japanese than the strange country. He tried to push his own idea by appealing to authority of the Japanese writers, for example Ono Touzaburo[小野十三郞]. Hydrogen bomb problems become an issue in the process. The members of Jindalle wrote about the placeness of Osaka, the certification of alien registration, the political discrimination, and the absolute poverty. At first they were mobilized, but they were gradually regained thier identity while participating in the offline assembly of Jindalle. They felt at home in there. Jindalle was their place. The argument in Jindalle was a struggle to keep their place against the intervention of 'General Association of Korean Residents'[朝總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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