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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접촉지대의 기원으로서 1963년 체육회담 고찰

A Review of the 1963 Sports Talks as the Origin of the Inter-Korean Contact 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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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63년 로잔과 홍콩에서 진행된 남북 체육회담은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이제도화된 공간에서 공식적으로 만난 첫 접촉지대이었음에도 기존의 마음통합연구에서는 그 의미를 다루지 못했었다. 본 연구의 목적은 IOC 서신과 당시외교부 문서를 통해 1963년 체육회담의 성사 배경과 전개 과정을 세밀하게분석하여 제도적 남북 접촉지대의 기원과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1963년 체육회담은 외형상 남북 NOC 대표들이 만나는 자리였으나 실제로는남북의 고위급 인사들이 관여하여 당국자 간 접촉지대를 최초로 형성한 회담이었다. 이는 남북대화라는 접촉지대를 통해서 남북 화해와 통합을 끌어내려는본연의 취지와는 동떨어진, 단일팀 구성을 통해 국제사회에 진출하려는 북한과북한을 인정할 수 없었던 남한의 마음 체계가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하지만이 회담은 남북의 첫 접촉지대의 기원으로서 의미가 있고, 남북 단일팀 구성을위한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Abstract

The 1963 inter-Korean sports talks in Lausanne, Switzerland and Hong Kong were the first contact zone after the division of Korea where the two Koreas officially met in an institutionalized venue, yet their meaning has not been addressed in existing studies of mindfulness. This study examines the origins and meaning of the institutionalized North-South contact zone by analyzing in detail the background and development of the 1963 talks via examination of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OC) correspondence and foreign ministry documents of that time. While the 1963 talks were ostensibly a meeting between representatives of the National Olympic Committees (NOCs) of the two Koreas, the talks were actually the first contact zone between high-level officials of the two Koreas, who controlled the delegations through government orders. It presented a clash of minds between the North’s desire to form a single team and the South’s desire to sabotage this, regardless of the original intention of bringing about inter-Korean reconciliation and integration through the contact zone of inter-Korean dialogue. However, the talks are significant as the origin of the first contact zone between the two Koreas and historically significant because the talks formed the basis for the formation of a single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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