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역사학의 3分科制度 형성과 역사인식·역사연구방법
A Study on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Three Divisional System and History Recognition of the Korean Modern Historic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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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에서 3분과제도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어떻게 바뀌어 왔으며, 그것이 역사연구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지 추적하였다. 3분과제도의 이식ㆍ재현ㆍ정착 과정을 통해 한국 역사학에 내재된 식민성, 분절성, 분단성을 찾아보려 하였다. 일본의 역사학은 ‘(서)유럽 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따라 자신만의 ‘일본적 오리엔탈리즘’ 및 침략주의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일본만의 특이한 제도인 국사, 동양사, 서양사라는 3분과제도를 정착시켰다. 식민지 조선의 官學을 상징하는 경성제국대학에서는 서양사 대신에 조선사를 포함시켜 국사, 동양사, 조선사라는 식민지 역사학의 체계를 정형화하였다. 私學의 역사학을 대표한 연희전문학교에서도 국사, 일본사 중심의 동양사, 서양사라는 강의제도를 유지했지만, 역사인식에서 민족주의적인 학풍을 유지하였다. 해방 직후부터 학회가 만들어지고 대학에 사학과가 설치되었지만, 일본이 만든 3분과제도는 국사, 동양사, 서양사라는 틀로 유지되었다. 강의 또한 별개로 진행되었다. 특히 경성(서울)대학 사학과의 경우 전공별로 연구실을 두고 일본의 講座制와 비슷하게 운영하였다. 해방공간에 진행되던 친일파 청산을 둘러싼 갈등, 격화되고 있던 이념갈등과 분단정권 수립, 한국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다양한 학문적 경향은 논쟁과 경쟁을 동반하지 않은 채 문헌고증사학에 의해 압도되어 갔다. 특히 한국전쟁은 사관 없는 역사연구를, 사료가 말하는 대로 기술해야 한다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연구를, 한국적 현실과 괴리된 역사연구를 합리화할 수 있는 발판이었다. 3분과제도와 연구방법의 획일화는 1950년대 들어 학회의 등장으로 더욱 고착화하였다. 일본 지배하에서 정착한 유럽 중심, 중국 副中心의 역사인식이 더욱 확대 재생산되어 갔다. 한국의 현실에서 특히 필요했던 식민사관의 극복을 역사연구를 통해 실현하지 못하였다. 비록 1960년대 들어 한국사 학계와 1990년대 들어 서양사 학계에서 이들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해 오고 있지만, 식민지 잔재인 3분과제도와 문헌고증사학을 극복하지 않는 한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한국 현대역사학에 내재된 식민성, 분절성, 분단성의 한계도 뛰어넘지 못할 것임을 의미한다. 제도와 인식의 식민성과 더불어 역사학의 제도와 내적 인식에 잔존해 있는 분절성, 분단성을 극복하고, 21세기 들어 심화하고 있는 주변국과의 역사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첩되어 있는 삼중의 주변부를 찾는 ‘지역으로서의 동아시아’를 발견하는 길도 하나의 선택점일 수 있다.
Abstract
This paper traces how the Three Divisional System of Historical Studies in Korea had been formed, how it has changed along with the transformations in Korean society since the Liberation, and its effects on historical researches. This study aims to discover factors of colonialism, fragmentation, and division that are still inherent in Korean Modern Historical Studies. In the process of justifying their policy of aggression based on (Western) Euro-centrism and Orientalism, the Japanese scholarship of history established the Three Divisional System, a unique system composed of National History, Oriental History and Western History. At the Keijo Imperial University, which represented the national academy(官學) of colonial Chosŏn, the history of Chosŏn was included instead of European history, so that the colonial historical system of National History, Oriental history, and History of Chosŏn could be standardized. Even at Yŏnhi College, which represented the historical scholarship of private schools(私學), the three divisional system of National History, Oriental history which was mainly composed of Japanese history, and Western history was maintained, though the academic tradition of Nationalism in its historical awareness persisted. After the Liberation, academic societies were formed and History Departments were officially established in universities. However, the Three Divisional System devised by Japan survived through the framework of National History, Oriental History, and Western History. While all the lectures were held by the same department in principle, the three fields were managed separately in practice. This was evident in the case of the History Department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where the two fields of the History Department, the Oriental History and the Korean History, gave admission and taught its first year students separately. It also maintained a management method similar to that of Japan’s Seating Lecture System(講座制) under the aegis of “research centre.”Throughout the courses of ideological clashes surrounding the removal of Pro-Japanese factions around the time of the Liberation, intensification of ideological conflict, establishment of divided governments, and the Korean War, scholarly tendencies were overwhelmingly taken up by bibliographical historical studies(文獻考證史學). In particular, the Korean War served as a stepping stone to rationalize their historical researches which were lacking in historical view, done under the justification of “writing as the materials dictated”, but actually was divorced from the Korean realities. Standardization of the system and research methodology became more permanently fixed in the 1950s with the establishment of academic societies. Scholars failed to perceive their colonial view of history(植民史觀) as a problem to be overcome, which was needed, given Korea′s circumstances. In conclusion, to overcome the fragmented and divided nature of the System of History, where the colonial legacy is still inherent, and to cope with the historical conflicts with the neighboring countries, it is needed to discover the East Asia as a historical region as its first 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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