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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용의 사상 발전과 현실 인식

LEE Gwan-Yong’s Ideology and Worldview Changes in 1920s Colonia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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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이관용(李灌鎔, 1891~1933)은 조선과 일본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 스위스에서 수학하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시켰다. 「의식의 근본 사실로서 의욕론」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한 이관용은 의지를 지각과 감정에 부속되지 않는 독립된 요소로 보면서, 이를 통해 일제하의 식민지배에 처한 조선인들이 민족의 재생을 위한 주체적인 삶의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관용의 철학론은 칸트 철학에 기초하였다. 그는 인간의 모든 활동을 신의 의지와 연결시키면서 이를 칸트의 해석과 등치시켰고, 또한 칸트에 기초하여 의지의 작동 방식에 대해 서술하였다. 이관용은 자신의 철학론에 기초하여 식민지라는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의 낙관적 시각은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서구문물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유학생 출신의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며 이를 숙성하고 내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유학 시절 유심론의 입장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동일하게 유물론이라고 비판하였으나, 귀국 후 조선사회의 현실을 맞닥뜨리면서 사회주의와의 연대까지 선택가능한 대안으로 상정하고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였다.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소련과 유럽을 다녀온 이관용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였지만, 현실 사회주의를 정확히 분석하지 못하고 이상적인 측면에 주목하는데 머물렀다. 이후 신간회 활동을 통해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의 연대를 도모하던 이관용은 『조선일보』 특파원으로 혁명 중국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북벌 도중에 일어난 국민당의 ‘쿠데타’를 바라보면서 현실사회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던 이관용은 결국 청년대중과 고등교육체계의 발전을 통한 사회개혁에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Abstract

Lee Gwan-Yong formed his own philosophy and worldview through his time studying abroad in Europe. In his PhD thesis, he considered willpower as an independent element from perception and emotions. He believed that Koreans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could recognize the independent movement for the nation’s liberation through their willpower. Based on Kant’s philosophy, he interpreted all human activity as the will of god. He also described the willpower’s mechanism based on Kant. Lee tried to overcome the practical difficulties of colonization based on his philosophy. This optimistic vision made his position evolve to look at the identity of the nation positively. He argued that Koreans should accept Western civilization. After returning home, he regarded Socialism as a selectable alternative for the reform of Korean Society. This represented a rather big ideological transition, as he had criticized both capitalism and communism as materialisms during his studies in Switzerland. Lee formed a critical perspective of bourgeois democracy while visiting Soviet Russia and Europe as a Dong-A Ilbo correspondent. On the other hand, his real socialism analysis was not accurate: he only took note of the ideal aspects of real socialism. After his Soviet journey, he promoted solidarity between the capitalist camp and the communist camp in Korea through Shinganhoe activities. In 1928, he faced China’s Nationalist Revolution as a Chosun Ilbo correspondent. Eventually, Lee expected to reform society through youth and the development of the higher education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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