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淵蓋蘇文 家門의 궤적과 복원
A Study of the Yeon Clan Families in Koguryo
0
조회
0
다운로드
1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고에서는 문헌과 금석문에 나타난 여러 가지 기록들을 분석하고 추정해서 연개소문 가문 일족들의 생몰년, 가계, 혼인관계, 활동과 이주민으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이를 통해 연개소문 가문 일족들의 생애와 계보를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었다. 대체로 6세기 초반에서부터 7세기 중반까지는 연개소문과 그의 선대가 활동하였던 시기이고, 7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연개소문 후손들이 살았던 시기이다. 증조에서 연개소문까지는 6세기에서 7세기 중반까지의 고구려 귀족으로서의 삶의 모습이 그려질 수 있고, 7세기 중반 연개소문 아들들의 삶은 고구려 귀족으로서의 삶과 당이라는 타국으로 이주한 이주민으로서의 삶이 겹쳐져 있으며, 손자 세대 이후로는 唐人으로 정착한 삶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8대의 삶이 세대마다 매우 인상적으로 전개되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도 고대사회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연개소문 일족들의 200여년간의 삶은 고구려의 운명과 같이 했고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향후에 연개소문 후손들의 묘지명은 추가로 발견된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 일족들의 삶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Abstract
This article aims to reconstruct the birth and death date of Yeongaesomun(淵蓋蘇文)’s clan members, family tree, and their lives as including that of immigrants, based on the literature and stele inscriptions. Between the early 6th century and the mid 7th century AD, it was the era of Yeongaesomun and his predecessors while his offsprings had lived after the mid 7th century AD. From his great-grand parents down to Yeongasoum’s period dating to the mid 7th century AD, the clan had lived as Goguryeo’s aristocrats. However, his grand children generation embraced fully the identity of Tang dynasty in their lives. It is very rare to see such a dramatic transformation of identity at each generation of family up to the 8th generation in ancient world. 200 years of Yeongaesomun clan had paralleled with the trajectory of Goguryeo and it was a turbulent journey for them. It is highly likely to discover the grave stones of descendents of Yeongaesomun further more, then his clan’s life would be better understood.
참고문헌 (67)
- "舊唐書", ~
- "新唐書", ~
- "資治通鑑", ~
- "册府元龜", ~
- "日本書紀", ~
- "三國史記", ~
- "三國遺事", ~
- "三國史節要", ~
- "東史綱目", ~
- "海東繹史", ~
- 池內宏, "高句麗討滅の役に於ける唐軍の行動", 東洋學報, 17(1) (1928)
- 신채호, "高句麗의 對唐戰役", 朝鮮上古史 (1948)
- 池內宏, "滿鮮史硏究" (1960)
- 村上四男, "新羅と小高句麗國", 朝鮮學報, 37-38 (1966)
- 이홍직, "淵蓋蘇文에 대한 若干의 存疑", 韓國古代史의 硏究 (1971)
- 武田幸男, "高句麗官位制の史的展開", 朝鮮學報, 86 (1978)
- 請田正幸, "高句麗莫離支考", 朝鮮歷史論集, 上 (1979)
- 이내옥, "淵蓋蘇文의 執權과 道敎", 역사학보, 99-100 (1983)
- 노태돈, "淵蓋蘇文과 金春秋", 한국사 시민강좌, 5 (1989)
- 한국고대사회연구소, "譯註 韓國古代金石文 Ⅰ" (1992)
- 이호영, "中齊張忠植博士華甲紀念論叢" (1992)
- 임기환, "6ㆍ7세기 高句麗 政治勢力의 동향", 한국고대사연구, 5 (1992)
- 김기흥, "西巖趙恒來敎授華甲紀念韓國史學論叢" (1992)
- 李成市, "高句麗泉蓋蘇文の政變について", 朝鮮史硏究會論文集, 3 (1993)
- 노태돈, "주몽의 출자전승과 계루부의 기원", 한국고대사논총, 5 (1993)
- 김수태, "李基白先生古稀紀念韓國史學論叢(上)" (1994)
- 전미희, "李基白先生古稀紀念韓國史學論叢(上)" (1994)
- 노태돈,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고구려관계 기사 검토", 경주사학, 16 (1997)
- 노중국, "新羅와 高句麗·百濟의 人材養成과 選拔", 新羅文化祭學術發表會論文集, 19 (1998)
- 노태돈, "귀족연립정권과 연개소문의 정변", 고구려사 연구 (1999)
- 連劭名, "唐代高麗泉氏墓誌史事考述", 文獻, (3) (1999)
- 김영하, "영욕으로 얼룩진, 비범한 고구려인의 초상 연개소문", 내일을 여는 역사, 3 (2000)
- 김영하, "高句麗 內紛의 국제적 배경", 韓國史硏究, 110 (2000)
- 이문기, "高句麗 莫離支의 官制的 性格과 機能", 白山學報, 55 (2000)
- 노태돈, "淵蓋蘇文 : 무모한 대외강경론자, 포악한 권력자", 한국사 시민강좌, 31 (2002)
- 이문기, "고구려 중리제의 구조와 그 변화", 대구사학, 71, pp.75~135 (2003), 대구사학회
- 김현구,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Ⅲ)" (2004)
- 지배선, "고구려 백제 유민 이야기" (2006)
- 이도학, "高句麗의 內紛과 內戰", 고구려발해연구, 24, pp.9~40 (2006), 고구려발해학회
- 박경철, "麗唐戰爭의 再認識", 동북아역사논총, (15), pp.137~199 (2007), 동북아역사재단
- 이문기, "高句麗 滅亡期 政治運營의 變化와 滅亡의 內因", 한국고대사연구, (50), pp.51~102 (2008), 한국고대사학회
- 노태돈, "한국고대사의 이론과 쟁점" (2009)
- 노태돈, "삼국통일전쟁사" (2009)
- 김진한, "榮留王代 高句麗의 對唐關係와 西北方情勢", 한국학, 32(4), pp.309~340 (2009), 한국학중앙연구원[DOI]
- 선봉조, "榮留王代政局主導權의 變化樣相과 淵氏勢力", 고구려발해연구, 33, pp.95~130 (2009), 고구려발해학회
- 김진한, "보장왕대 고구려의 대당관계 변화와 그 배경", 고구려발해연구, 39, pp.97~124 (2011), 고구려발해학회
- 정원주, "榮留王의 對外政策과 政局運營", 고구려발해연구, 40, pp.9~43 (2011), 고구려발해학회
- 정연식, "평양 첨성대의 서사구조와 연개소문의 탄생", 역사와 현실, (79), pp.231~269 (2011), 한국역사연구회
- 최일례, "연개소문의 출자에 관한 몇 가지 의문", 한국사상과 문화, (57), pp.153~184 (2011), 한국사상문화학회
- 정원주, "高句麗 滅亡 硏究", 박사, 한국사학, pp.고고학전공, 2013
- 정원주, "男生의 失脚 배경과 그의 行步", 한국고대사연구, (75), pp.305~338 (2014), 한국고대사학회
- 이성제, "高句麗·百濟遺民 墓誌의 出自 기록과 그 의미", 한국고대사연구, (75), pp.139~172 (2014), 한국고대사학회
- 서영교, "연개소문의 對설연타 공작과당태종의 안시성 撤軍 - 『資治通鑑』 권198, 貞觀 19년 8·12월조 『考異』의 「實錄」 자료와 관련하여 -", 동북아역사논총, (44), pp.249~283 (2014), 동북아역사재단
- 정호섭, "고구려 망국의 리더십", 내일을 여는 역사, 58 (2015)
- 서영교, "乾封元年(666) 封禪문제와 唐의 對고구려 정책", 대구사학, 120, pp.71~100 (2015), 대구사학회
- 신종원, "중국 소재 한국 고대 금석문", ~ (2015)
- 박승범, "淵蓋蘇文 가문의 家系 기록 검토", 한국고대사탐구, (22), pp.47~76 (2016), 한국고대사탐구학회[DOI]
- 김진한, "高句麗 滅亡과 淵蓋蘇文의 아들들", 한국고대사탐구, (22), pp.117~143 (2016), 한국고대사탐구학회[DOI]
- 이기범, "고구려유민 묘지명의 조상인식 변화와 그 의미", 석사, pp.2016
- 여호규, "新發見 <高乙德墓誌銘>을 통해 본 高句麗 末期의 中裏制와 中央官制", 백제문화, (54), pp.249~284 (2016), 백제문화연구소[DOI]
- 안정준, "唐代 墓誌銘에 나타난 中國起源 高句麗 遺民 一族의 현황과 그 가계 기술 -고구려 유민(遺民)의 개념과 범주에 대한 제언-", 역사와 현실, (101), pp.35~69 (2016), 한국역사연구회
- 정호섭, "高句麗史에 있어서의 이주(migration)와 디아스포라(diaspora)", 선사와 고대, (53), pp.135~168 (2017), 한국고대학회[DOI]
- 채미하, "666년 고구려의 唐 封禪儀禮 참여와 그 의미", 동북아역사논총, (56), pp.48~91 (2017), 동북아역사재단[DOI]
- 김수진, "唐京 고구려 유민 연구", 박사, pp.2017
- 방용철, "淵蓋蘇文 집권기 고구려의 정치 운영", 박사, pp.2018
- 방용철, "연개소문의 후계구도 정립과 死亡", 대구사학, 131, pp.125~155 (2018), 대구사학회[DOI]
- 김강훈, "고구려부흥운동 연구", 박사, 교육학, pp.2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