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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한전의 王號와 그 실상

A study of ‘the King and his real state’ in 『Samkukji(三國志)』’s Hanjeon(韓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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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號의 등장은 건국신화와 함께 한국 고대의 국가 성립을 알려주는 주요 지표 중 하나로 꼽는다. 『三國志』 東夷傳은 여러 정치체의 지배자로서 王, 加, 主帥, 渠帥, 長帥, 大人 등의 존재를 전한다. 왕의 출현은 그것이 대두하기 이전에 渠帥(長帥), 大人 등이 이끌었던 세력 단위보다 정치적 통합과 사회발전이 앞섰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삼국지』 韓傳은 삼한 諸國을 크기에 따라 大國과 小國으로 나누고 그 지배자도 각각 臣智와 邑借 등으로 구분해 불렀다. 이는 동예의 거수들을 侯․邑君․三老 등으로 나눈 것과 맥이 닿는다. 삼한 대국의 신지는 동예에서 왕으로 봉해졌던 不耐濊侯에 비견된다. 한전의 ‘王’號로는 마한 目支國의 ‘辰王’, 辰韓의 12국이 속했던 ‘진왕’, 그리고 弁韓 12국에도 있었던 ‘왕’ 등의 사례가 확인된다. 목지국 진왕은 대국의 신지 중에 성장했으며, 그는 중국 군현과의 교섭에서 대표성을 갖는 상징적 존재로서 마한 지역의 왕으로 인식되었다. 진한 12국이 속했던 진왕은 마한의 진왕과 同名異體이며, 그 실체는 사로국 중심의 진한 연맹체를 이끌었던 진한의 왕으로 상정된다. 변한의 왕은 변한 12국 전체를 아우르는 왕이라기보다는 개별 소국의 수장을 가리키며, 진왕의 위상에는 미치지 못했던 존재로 추정된다. 고조선에서 ‘侯’가 ‘稱王’한 뒤에 왕계가 전승되고, 官名을 가진 인물이 확인되는 사실은 단순한 호칭 변화를 넘어서 국가 성립이라는 중대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수반한 것이다. 『삼국지』 한전에 고조선의 준왕이 삼한으로 남하하여 스스로 ‘韓王’을 칭했다고 전하는데, 『후한서』 한전에는 그 뒤 준왕의 후손이 끊기자 마한사람이 다시 자립해 ‘辰王’이 되었다는 사실이 추가되었다. 이는 ‘한왕’이 뒤에 ‘진왕’이라고 칭할 수도 있다는 사실, 곧 양자가 모종의 관계를 갖는다는 한전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마한이 진․변한에 대해 우위에 있었다는 서술경향은 마한을 대표하는 지배자로서 진왕의 대두와 연계되어, 진왕이 삼한 전체의 연맹왕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졌을 법하다. 『진서』 동이열전에서 확인되는 ‘馬韓主’와 ‘辰韓王’의 존재는 『삼국지』 한전에 보이는 진왕 소멸과 무관하지 않으며, 당시 삼한사회의 변화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부여의 군왕에서 유추되는 성격을 소급하여 辰王에 접근한다면, 삼한 ‘왕호’가 갖는 정치적 위상은 물론 삼한의 사회상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다. 진왕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목지국은 당시 諸韓國 중에서 중심이 되는 대국으로 성장했으며, 동예의 중심 소국이었던 不耐濊國, 倭傳의 여왕이 도읍했던 邪馬壹國에 비견된다. 삼한의 ‘진왕’은 비록 왕호를 칭했지만, 당시 부여나 고구려의 王에 견줄 때 그 위상이 낮았다. 곧 중앙의 官制를 비롯한 통치체계 등은 물론, 제사의례 시행 등의 종교적 권위에서도 상대적으로 한계를 갖는 존재였다.

Abstract

The appearance of the 'King' is one of the main indicators of the foundation myth and the establishment of Korea’s ancient states. In the 『Samkukji(三國志)』DongiJeon(東夷傳) beings, such as King(王), Ga(加), Jusu(主帥), Geosu(渠帥), Jangsu(長帥), Daein(大人) as the rulers of various political groups. The emergence of the names of Kings is understood to have preceded political integration and social development than the power unit, which was led by Jangsu(長帥), Daein(大人). Power and in accordance with the size of each countries of Samhan, which are conveyed in the 『Samkukji』 Hanjeon(韓傳), were divided into Daeguk(大國) and Soguk(小國), and the rulers were sequenced Sinji(臣智) and Epcha(邑借) and so on. The pulse is to be divided into contact with the fact that Geosu(渠帥)s of DongYae are be divided into Hu(侯), Epgun(邑君), Samro(三老) and so on, Jusu(主帥) of Samhan’s Daeguk, which was on the Sinji level, were comparable with Bulnaeyewho(不耐濊侯), which was raised as a king in DongYae. The names of king in Hanjeon are verified in the cases, such as Jinwang(辰王) of Mahan Mokjiguk(目支國), Jinwang which were the 12 of the countries into Jinhan, and Wang which were in the 12 of the countries of Byeonhan. Jinwang of Mokjiguk is understood to have rise by growth of the Sinji’s level ruler and he was perceived as having representative in negotiations with counties and prefectures of China. Jinwang which was belonged the 12 of the countries of Jinhan have the same name as Jinwang of Mahan, but a different being, the reality was postulated the king of Jinhan that led the Soguk federation of Jinhan. The king of Byeonhan was the Geosu of Epcha level and fell short in stature to Jinwang. The things that the throne was passed after Who(侯)’s referred to as the king and a person with an official title was confirmed in the Gojoseon are understood the establishment of the country as a major political change. Junwang was moved to Mahan area and took to calling the ‘Hanwang(韓王)’ in the 『Samkukji』 Hanjeon, after in fact that back on one’s feet to be ‘Jinwang’ because Junwang’s heirs ware cut off in the 『Huhanso(後漢書)』. These are can be understood as a revision in the future generations. However these thing are also shown the Hanjeon’s recognition that two thing are closely related. The existences of ‘Mahanju(馬韓主)’ and ‘Jinhanwang(辰韓王), which are appears in the 『Jinso(晉書)』, seems to reflect the change of Samhan society at that time. If access to the political status and be retroactive in fact a religious authority, which can be inferred from Gunwang(君王) of Buyeo(夫餘), it can add and understanding of the social aspect of Samhan society and Jinwang. Even though Jinwang of Samhan and Bulnaeyewho of DongYae took to calling the names of king themselves, they were in lower political status than king of Koguryo and Buyeo at that time. This is central control system, including the rule, see the limits in implementation such as a rite of sacrifice, as well as religious authority. However, the Jinwang’s political growth are expected to have a possibility that can be connected with the Gunwang of Buyeo at any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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