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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설(李容卨)의 3.1운동 참가와 북경에서의 망명생활(1919~1922)

Lee, Yong-Seol's 3.1 movement and his Beijing asylum(1919~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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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용설은 세브란스의전의 학생 대표로 학생단 독립운동의 준비과정에 직접 참여했고 3.1운동 과정에서 학생동원, 독립선언문 배포, ≪독립신문≫ 간행 등 활동을 했다. 그의 북경망명은 강병필과 서월보 및 대한독립청년단을 통해 이루어졌고, 그 목적은 독립운동보다 의학공부를 계속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노하중학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익힌 후 1920년 초부터 북경협화의학교 병원부에서 수련의로 일하면서 북경고려기독교청년회를 재정비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1921년 초부터 이용설은 회장으로 청년회를 이끌며 서왈보, 신채호 등과 교류하며 북경의 독립운동단체 보합단 및 군사통의회를 지지하였다. 하지만 그는 독립운동 단체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고 무장 항일투쟁론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안창호의 실력양성 이론 및 흥사단의 취지에 경도하여 1922년 6월 흥사단의 예비단원이 되었다. 그런데 안창호의 만남 후 이용설은 바로 귀국의 길에 올랐다. 그의 귀국은 일제와의 타협 속에서 이루어졌다. 귀국 이후에 자유롭게 활동하고 독립운동에 관한 활동을 하지 않았던 점으로 보아 귀국하기 전에 사상적으로 전향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Lee, Yong-Seol was one of the representatives of Severance Medical College and participated directly in the preparatory process of the Korean Independence Youth Party's independence movement. He participated in activities such as mobilization of students, distribution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nd publication of the Independent during the 3.1 movement. His Beijing asylum process is presumed to be related to a secret network linked by Gang Byung - Pil and Seo Wol-Bo, and The object is to continue his studies. Lee Yong-seol had worked as an intern at the Hospital of Peking Uion Medical College to launch Korea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And he supported Bohabdan and Military council in Beijing. However, he did not directly engage with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Beijing while interacting with Shin Cha-ho, etc. He became a prep member of The Young Korean Academy in June, 1922, in agreement with Ahn Chang-ho's theory of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purpose of The Young Korean Academy. In the middle of 1922, he leaved for home through compromise with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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