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1949년 이전 북경지역 한인사회의 위생실태와 세브란스 출신 의료인의 활동

The Hygiene Status of the Korean Society in Beijing before 1949 and the Activities of Medical Personnel from Severance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에서는 해방 전 북경으로 이주하였던 한인사회의 현황과 생활사 속에서 위생실태와 의사들의 활동상을 조명하였다. 북경이라는 중국의 정치의 중심이자 역사적 도시에서 ‘망국노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기아와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처럼 언급되고 있는 우당 이회영도 경술국치 전 한반도에서 지냈던 풍족한 삶을 살아갈 수 없었다. 기아로 인한 위생상태는 전염병으로 이어져 한인사회를 위협하였으며, 아편을 취급하는 자들로 한인사회에 대한 평판은 좋지 않았다. 북경에서 활동했던 한인 의사로 대표적인 인물은 이자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20년 만주에서 재이주 하여 북경 해전에서 농장 경영과 함께 병원을 개업하여 의료행위를 하였다. 그가 남긴 기록 속에서 북경지역 병원 설립과정 및 북경 전염병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세브란스인들은 이미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 북경의 협화의학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용설이 대표적인 인물이며, 김현택도 같은 공간에서 활동했다. 이렇게 세브란스인들이 협화의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김창세와 같은 선배들의 힘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Abstract

This article sheds light on the status of the Korean Society, which moved to Beijing before liberation, and on the status of hygiene and doctors' activities in the history of life at the time. Those who led the "life of people who has lost his country” in China's political center of Beijing did not escaped starvation and destitution. Udang, who is mentioned as a symbol of noblesse oblige in the history of Korea's independence movement, was unable to live a rich life on the Korean Peninsula after 1910. The unsanitary conditions and starvation led to the epidemic threatening the Korean community, and some of Korean opium-handlers impaired the Korean reputation. Lee Ja-hae is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doctors who used to practice in Beijing. He moved back from Manchuria in 1920 to open a hospital and manage a farm. From the records he left, we can get a glimpse of the process of setting up the hospital and of the Beijing epidemic. The Severance people had already been getting educated at Peking Union Medical College since shortly after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Lee Yong-sul is a representative figure who worked in the same space as Kim Hyun-taek was. It must have been the power of seniors like Kim Chang-se that led the Severance people to build ties with the Academy.

참고문헌 (40)

  1. "중외일보", ~
  2. "신한민보", ~
  3. "부산일보", ~
  4. "매일신보", ~
  5. "동아일보", ~
  6. "재만조선인통신", ~
  7. "三千里", ~
  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ノ部-在支那各地(2)", ~
  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ノ部-在支那各地(4)", ~
  10. "朝鮮人ニ對スル施政關係雜件-一般ノ部(2)", ~
  11. 1933년 管內狀況報告書, "北平警察署", ~
  12. 님웨일즈, "아리랑" (1984), 동녁
  13. 이은숙, "民族運動家 아내의 手記" (1974), 正音社
  14. 정화암, "이조국 어디로 갈것인가" (1982), 自由文庫
  15. 李淑, "竹槎回顧錄-조국광복에 命을 걸고-" (1993), 李海榮
  16. 국가보훈처, "유기석 회고록, 三十年放浪記" (2010), 국가보훈처
  17. 國家報勳處, "李慈海自傳" (2007), 國家報勳處
  18. 국사편찬위원회, "韓國獨立運動史 資料 37" (2001), 국사편찬위원회
  19.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유자명수기 한 혁명자의 회억록" (1999),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 구파백정기기념사업회, "항일혁명투사 구파 백정기" (2009), 구파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
  21.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운암 김성숙의 생애와 사상" (2013), 선인
  22. 김창수, "해석 손정도의 생애와 사상연구" (1999), 넥서스
  23. 손염홍, "근대 북경의 한인사회와 민족운동" (2010), 역사공간
  24. 신규환, "국가, 도시, 위생: 1930년대 베이핑시정부의 위생행정과 국가의료" (2008), 아카넷
  25. 정운현, "안중근家 사람들" (2017), 역사인
  26. 강영심, "신한청년당의 결성과 활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 (1988)
  27. 김광재, "중일전쟁 이후 北京지역의 한인단체 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3), pp.223~268 (2004),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8. 김광재, "1920년 전후 上海 한인사회의 위생의료 생활", 한국민족운동사연구, (82), pp.129~168 (2015),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9. 김동수, "세브란스와 함께 바람에 시달리며, 대한기독교서회", 기독교사상, 10(1) (1966)
  30. 김주용, "東天 申八均의 독립운동 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0), pp.45~76 (200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31. 김주용, "해방 이전 화북지역 한인이주와 ‘생활체험’", 만주연구, (10), pp.7~39 (2010), 만주학회[DOI]
  32. 김택경, "1933年 北平市公安局長 인사분쟁과 그 정치사회적 함의", 동양사학연구, (139), pp.293~336 (2017), 동양사학회[DOI]
  33. 손염홍, "일제의 중국 화북침략과 북경지역 한인의 마약문제",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8), pp.301~355 (2007),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DOI]
  34. 박강, "화북 이주한인과 아편마약 밀매", 한국민족운동사연구, (55), pp.289~326 (2008), 한국민족운동사학회
  35. 박걸순, "申八均의 생애와 민족운동", 역사와 담론, (57), pp.153~191 (2010), 호서사학회
  36. 박걸순, "申采浩의 아나키즘 수용과 東方被壓迫民族連帶論", 한국독립운동사연구, (38), pp.197~231 (2011),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DOI]
  37. 신규환, "20세기 전반 北京의 都市空間과 衛生 ― 空間의 再編과 龜裂을 중심으로 ―", 동양사학연구, (128), pp.385~423 (2014), 동양사학회
  38. 신규환, "해방 이후 남북 의학교육체계의 성립과 발전 — 이용설과 최명학의 생애와 의학인식을 중심으로", 인문논총, 74(1), pp.215~245 (2017), 인문학연구원[DOI]
  39. 장규식, "3,1운동과 세브란스", 연세의사학, 12(1) (2009)
  40. 조규태, "1920년대 북경고려기독교청년회의 종교활동과 민족운동", 한국기독교와 역사, (31), pp.163~198 (2009), 한국기독교역사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5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