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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애(竹崖) 임열(任說)의 생애와 교유 양상

A Study on the Life and Association of Jukae(竹崖) Im Yeol(任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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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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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문집이 없어 기존에 자세히 연구되지 못한 죽애 임열의 생애와 문학에 대해 우선 그 생애를 실증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여 살펴보며, 얼마 되지 않는 습유작을 통해 교유 관계에 대해서도 밝히고자 하였다. 그 결과 죽애의 생애 가운데 주목되는 사실로, 세 번이나 대과에 급제하며 문재를 드러내다, 28세 되던 1537년 가을, 호당에 선발되어 독서당에서 사가독서하며 최연(崔演), 엄흔(嚴昕), 송기수(宋麒壽) 등을 만나고, 이후 윤현(尹鉉), 임형수(林亨秀) 등과 교유하며 1541년에는 이들을 포함해 당대 쟁쟁한 문인 12인과 ‘호당수계(湖堂修契)’라는 계를 맺어 교유한 흔적을 밝혔다. 교유한 이들 중 특히 임형수에게는 회령판관으로 보내며 백운(百韻)의 시를 지어주고, 송기수와는 학문적인 내용의 편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죽애는 을사사화가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544년에 우부승지가 되면서 이듬해 1545년 곧 인종 승하 후 명종 즉위와 함께 일어난 을사사화에서도 우승지로서 왕명 출납의 역할만을 다하였으리라 추정될 뿐, 적극적인 행보는 드러내지 않은 점에서 역사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죽애는 이후로 외직과 내직을 반복하며 꾸준히 벼슬을 역임하면서 당대 문인들과 교유한 흔적을 남겼는데, 그들 중 유헌 정황, 미암 유희춘, 소재 노수신 등과의 교유가 주목된다. 이들은 모두 을사사화에 희생되어 유배 갔던 인물들로, 유배지에서, 또는 해배되어서도 죽애와 관계를 가졌다는 점에서 죽애가 을사사화로 희생된 인물들과도 인간적, 문학적, 학문적인 교유를 잃지 않고 친분을 유지하였던 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을사사화 시기, 죽애가 적극적인 행보를 드러내지 않은 점으로 인해 기존에 부정적으로 평가받았던 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의 시각을 제시해준다고 여겨진다.

Abstract

This paper looked at the life and association of Jukae(竹崖) Im Yeol(任說) in 16C. But There is not Jukae(竹崖)'s personal anthology left. For that reason, historically Jukae(竹崖) could not be judged properly. In more detail, he has been negatively evaluated in history because he was presumed to have played only the role of the king in the kingdom as a royal majordomo in the period of civil war Eulsasahwa(乙巳士禍), and did not reveal any active steps. But According to the records of the Joseon Dynasty, he did not receive a prize as a reward for Eulsasahwa(乙巳士禍). Since then, he has repeated his career as a local administration and a member of a civil servant. At the same time he interacted with the characters of the exiled person, Jung Hwang(丁熿), Yu Hee Chun(柳希春), Noh Susin(盧守愼). This is highly noted in existing negative evaluations about him. Then I studied in detail about the life and literature of Jukae(竹崖) using positive way. In this paper, the life and literature of Jukae(竹崖) Im Yeol(任說), which had no literary works, were examined in an empirical way. And I tried to reveal his co-relation through some of his a few works. In the process, I can Figure out about his companionship, and literary activities. As a result, from now on, I can said something important in his life. First, it is noted that he passed the national examination three times. Second, he was chosen at the age of 28 at the reading system for the servant and read in the reading room(Doksseodang, 讀書堂), and he met with Choi Yeon(崔演), Eum-kun(嚴昕), Song Kyu-su(宋麒壽). The following year he has joined with Yoon Hyun(尹鉉) and Lim Hyeong-su(林亨秀). In particular, he gave a poem of Baekun(百韻詩) to Lim Hyung-su(林亨秀), who was leaving for the local Administration of Hoeryong(會寧). The future in 1541, he participated in a series of works called "Hodang Shu Shuang(湖堂修契)" with 12 contemporary literary scholars including them. Among them he exchanged academic letters with Song Ji-su(宋麒壽). Finally he excelled literature, also maintained a friendship with the exiled people because of Eulsasahwa(乙巳士禍). Historically, he judged negatively, but the latter is the fact that we did not know about it properly. It is said that the significance of this paper. Starting with the basic research that I tried in this paper, I hope that more active and in-depth research will be done in the future. It is a limitation that I can not emphasize the important point. In addition, it is the limit that I can not emphasize the problem consciousness by concentrating on basic research in this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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