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의 탄생-일제 시기 문화재의 제도화와 식민주의
The invention of ‘Gojeok (Old Relics)’; Institutionalization of Cultural Properties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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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일제시기 근대적인 문화재 개념의 성립과 그 제도화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전근대 「고적」이라는 용어의 근대적 변용 과정을 통해 일제시기 문화재와 그에 상응하는 개념의 성립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고적’이 지니는 근대적 성격을 고찰하고 그 제도화에 내재된 식민주의의 함의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와 각종 지리지에 나타나는 전근대 「고적」의 용례를 통해 「고적」의 개념과 가치의 부여 기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고적」은 예전의 자취라는 축자적 의미에 충실하면서 유적, 유물, 자연물, 옛 일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 문화재와는 개념적으로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조선시대 지리지에서 「고적」의 선별에는 현존의 실재성보다는 유서적 가치에 입각한 역사적 장소성이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들어 근대 학문의 등장과 함께 도입된 새로운 개념에 주목하였다. 1906년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답사 보고서에서는 아직 근대 문화재로서의 ‘고적’ 개념은 등장하지 않지만, 이마니시가 조사의 대상을 선정할 때 유물과 유적의 실재성, 즉 물리적으로 남겨진 흔적을 중시했다는 점은 주목된다. 근대적 문화재로서 ‘고적’의 개념은 조선총독부 주도로 식민지 조사의 일환으로 유적과 유물의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도입되고 정착되었다. 그 시점은 1914년경이다. 일본에서 문화재를 통칭하는 ‘사적’이 근대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고양이나 국민 정체성의 확립에 적극 활용된 반면, 식민지 조선에서는 역사가 배제된 ‘고적’이 의도적으로 채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고적’ 개념을 토대로 1916년 식민지 문화재 법령으로 「고적급유물보존규칙」이 제정되었다. 등록 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이 법령은 모든 유적과 유물을 대장에 등록한 후 현상에 따라 보존 방법의 완급을 강구하는 것으로 구상되었지만, 본래의 취지대로 시행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식민지 조선에서 문화재 법령은 보존과 보호보다 식민지 조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고적 조사를 뒷받침하였다. 일제 시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수립된 문화재 정책은 식민주의적 시각에서 도입되고 제도화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establishment of the modern concept of cultural properties and their institutionalization in Korea. For this, I reviewed the process by which the concept of cultural properties and their equivalents was established through the modern transformation of the term ‘Gojeok (Old Relics)’, and the implications of colonialism inherent in its institutionaliza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ccording to the usage of Gojeok (Old Relics) in Joseonwangjosillok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various geographical books in the Joseon dynasty, Gojeok were often used to mean ‘old traces’. The selection of the lists of Gojeok depended on the historical placeness rather than the reality of existence. In the 20th century, new concepts were introduced with the emergence of modern scholarship. Although the concept of ‘Gojeok’ as modern cultural property did not yet appear in Imanishi Ryu’s field trip report in 1906, it attracted attention in that Imanishi emphasized the real existence of relics, that is, the physical traces left behind, when selecting the subject of survey. The concept of ‘Gojeok’ was introduced in the process of conducting surveys of archaeological sites and old architecture as part of the colonial investigation led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That point was around 1914. In Japan, ‘Sajeok (historic relics)’ was actively used to promote the ideology of the emperor system and build national identity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a modern nation, while in colonial Joseon, ‘Gojeok’ that excluded history was intentionally adopted. In 1916, the Act of Rules for Preserving Old Relics and Artifactswas enacted based on the concept of ‘Gojeok’. The Act was focused on the archaeological and architectural surveys as part of colonial investigation rather than preservation and protection of cultural properties in colonial Joseon. It is worth noting that the cultural properties policy established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as introduced and institutionalized from a colonial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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