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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호리유적 묘지의 변천과 사회상

Graveyard in Daho-ri and the change of its social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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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김해지역권에 속한 창원 다호리유적의 부장품을 계기연대법으로 양식 편년하고, 10단계(Ⅰa기~Ⅴb기)의 무덤 조영 양상을 통하여 다호리 정치체의 변천상을 구명한 것이다. 정치체의 계층은 각 단계에서 무기형검을 포함하며 청동기가 부장된 피장자를 수장, 그 다음으로 부장한 소수의 피장자를 수장층, 그리고 일반인으로 설정하였다. 이 정치체는 문헌기록에 나타나는 가락국으로 보고자 한다. 절대연대는 貨泉(AD 14년 생산)과 목곽묘의 출현시기를 참조하여 각 단계를 1世代 단위로 설정하였다. 수장묘는 Ⅰa기(BC. 1세기 말)부터 출현하지만, 수장층이 두터워져 수장권이 완성되는 시기는 Ⅱb기(AD.1c 40년대)부터이므로 이 시기부터 가락국이 시작된 것이다. Ⅱb기~Ⅲa기는 수장과 수장층 묘에서 청동검과 다수의 청동기가 부장되는 시기로서 특히 대마도와의 대외교역이 번성한 시기였다. 그리고 철부의 부장이 월등하게 증가하기 시작하는 Ⅲa기(70년 전후)에 철·철기 생산과 농업 생산성 그리고 대외교역이 가장 번성하였다. 그 대표적인 무덤이 가장 화려한 금속기를 부장한 1호 묘이다. Ⅲb기(100년 전후)부터는 철검만 부장되며, 청동기는 칼집 장신구에 국한되고, Ⅳa기(120년 전후)부터는 다호리유적보다 고김해만 연안의 제 유적에서 청동검·동경·구슬을 부장한 무덤이 1기씩 출현한다. 그래서 Ⅳa기부터는 최고위의 수장은 김해에서 선출되고, 다호리집단의 수장은 그 다음 위계에 편입된다. 그러다가 Ⅴa기(170년 전후)·Ⅴb기부터는 김해 양동리유적에서 연속하여 최고위의 목관묘가 조영된다. 이 시기는 양동리유적에서 목관묘를 능가하는 초대형의 목곽묘가 출현하는 시점이므로 정치체는 더욱 발전한다. 다호리 정치체는 이와 연동하여 200년에는 소멸하였다. 논의 전개상 수장이라 표기하였으나 실상은 가락국왕임을 밝혀둔다. 묘지는 무덤의 분포를 통하여 중앙·남·북 묘역으로 나누어지는데 Ⅰa기~Ⅲb기에만 중앙묘역에 수장묘가 등장하고, 수장권이 김해지역으로 교체된 Ⅳa기부터는 남·북묘역에 수장묘가 조영되고, 김해지역의 지역색을 가진 와질토기가 제작되는데 이것도 정치체의 변화와 연동된 현상이다.

Abstract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change in the shape of the political body that existed in the Daho-ri site in Gimhae based on the different styles of tombs constructed there across the ten periods (from Period I a to Period V b) that it chronologizes from sequence dating of the burial goods. For each period, three social classes, namely chiefs, aristocrats, and ordinary people, are identified by the amounts of bronzeware, bronze swords, ironware, and iron swords buried with them. Following the existing literature records, this political body is assumed to be Garakguk. Each period corresponds to a single generation and the absolute age of the site was inferred from the age of the coins from the Xin dynasty found in Daho-ri (produced in AD 14) and the time at which wood coffin tombs began to be produced. The fact that the tombs for aristocrats began to be constructed in Period I b (the early first century AD) while the tombs for chiefs had existed since Period I a (the late first century BC) suggests that Garakguk started in Period I b. From Period II b to III a, many bronze swords and bronzewares were buried with chiefs and aristocrats suggesting that trades with China and Japan were frequent at this time. Period III a (around AD 70), characterized by the increased numbers of iron axes used as burial goods, was the time when iron and ironware production and trade with foreign countries thrived alongside the increased agricultural productivity. Tomb no.1 where the most extravagant ironware was buried was constructed in this period. Since Period III b (around AD 100), only iron swords had been buried while the use of bronze had been restricted only to the decorations on the sheaths. Since Period IV a (around AD 120), the tombs with bronze swords and bronze mirrors had been constructed only on the coastal areas of Gimhae Bay (one for each generation) while none had been in Daho-ri. From this, it is inferred that, since Period IV a, the supreme chiefs had been selected from the Gimhae area while the chiefs from Daho-ri had been incorporated as the lower rank right after the chiefs from Gimhae. Since Period V a (around 170 AD) and Period V b, the wooden coffin tombs for the highest rank had been constructed at the Yangdong-ri site in Gimhae. This was also the period when wooden chamber tombs much larger than wooden coffin tombs began to be constructed in Yangdong-ri, suggesting that the political body in this area was further developed and this led the political body in Daho-ri to disappear around 200 AD. The graveyard can be divided into three parts, the Central, Southern, and Northern, according to the distribution of the tombs. From Period I a to III b, the tombs of chiefs were constructed in the Central site. After Period IV a, the chief tombs were constructed in the Southern or Northern sites. The gray potteries typical for the Gimhae area also started to be produced in Period IV a in relation to the change in the political bodies around this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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