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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직후 상주 지역질서의 재편과 존애원存愛院

The Reorganization of Order in the Sangju areas and Jonaewon(存愛院) after Japanese Invasion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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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임진왜란은 조선사회에 매우 큰 충격을 역사적 사건이었다. 특히 전쟁의 피해가 가장 컸던 경상도는 전쟁 이후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전쟁 이후 재건의 중심에는 사족士族들이 있었고, 이들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을 바탕으로 지역사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상주지역은 임란 초기 북천전투의 패배로 인하여 구심점을 잃고, 산 속으로 숨어들어갔으나, 선조의 교서, 김성일의 격문 등을 근거로 김각金覺‧김홍민金弘敏‧이봉李逢 등이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전투하여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뒤 상주지역의 서애문인들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의 재건을 도모하게 되었다. 이들은 향안鄕案의 중수, 향약鄕約의 시행 등 예교(예의와 교화)를 우선으로 하는 개건 방향을 정하였으며, 그 중심인물은 김각‧정경세‧이준李埈‧이전李㙉 등이었다. 이들은 우선적으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국醫局인 존애원存愛院을 창설하여 의료활동을 전개하였다. 존애원은 의국으로 출발하였으나, 백수회白首會를 개최하고, 교육장소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존애원은 17세기 중엽 급격히 쇠퇴하였다. 1607년 도남서원이 창설됨으로 인하여 사족들의 교육공간으로서의 기능과 여론 형성 장소로서의 역할은 도남서원으로 넘어갔으며, 재정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17세기 중반 이후에는 의국(병원)으로서의 기능도 상실하였다. 상주지역의 서애문인들은 상주지역의 현안이 전쟁으로 황폐해진 전답 등을 소복하여야 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충격은 이들에게 경제적인 소복보다는 다른 차원의 질서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전쟁과정에서 나타난 인륜의 파괴는 이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결국 임란 이후 질서 재편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예교의 복원을 들고, 이를 위하여 존애원의 창건과 향안의 중수 및 향약의 실시를 시도하였던 것이다.

Abstract

Japanese invasions of Korea in 1592 was truly a shocking historic event for the Joseon Dynasty. In particular, Kyoungsang province where the ravages of the war had been worst needed the restoration of new order. Gentry played key roles in reconstruction after the war as taking the leadership in the local history from activities of voluntary army at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The gentry in the Sangju areas lurked in the mountain for losing their central roles for being defeated at the Bukcheon battle (北川戰鬪) in the beginning of the war. However, due to the authority of King Seonjo’s message and Kim seongil’s manifesto, Kim gag (金覺), Kim hongmin(金弘敏), and Lee bong(李逢) had considerable successes at fighting the Japanese through raising voluntary army. They promoted to reorganize local community with Seoae’s followers after the war. Kim gag, Jeong kyoungsae(鄭經世), Lee jun (李埈), and Lee jeon(李㙉) played leading roles in taking the direction of reconstruction, which prioritized the edification issues related to the remolding of Hyangan and enforcement of Hyangyak. They also executed medical activities with establishing a public clinic, Jonaewon. Although Jonaewon(存愛院) started a medical clinic, it was also used as a place for educational purpose and party for the elderly. It lost its main function as a public clinic for financial trouble in the mid-17th century. In addition, Donam seowon(道南書院), founded in 1607, became a central place for academic meeting and formation of public opinion among gentry. Seoae’s followers in the Sangju areas recognized that the most urgent issue was the recovery of devastated fields after the war. However, the damage of war motivated them to establish a different kind of social order rather than economic recovery. Destruction against humanity during the war was the most shocking problem to them. Therefore, they decided to reestablishment of Enlightment for civility(禮敎) as the most critical task in reorganizing social order. For such a purpose, they tried the establishment of Jonaewon, Hyangan, and Hyangy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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