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서산 김흥락의 이상과현실 대응

Seosan Kim Heung-rak’s Ideals andResponse to Reality

2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김흥락은 조선왕조 말엽에 태어나 개항기를 살다간 성리학자였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서구 세력이 무력을 앞세워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양 사회에 강압적으로 통상을 강요하던 때였다. 조선 또한 일본의 강요로 문호를 개방하여 불평등조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가치관이 다른 서구 문명이 유입되어 사회는 극도로 혼란에 빠졌다. 이 시기 조선은 왕실의 외척이 세도정치를 단행하던 시기로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모순들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동학농민전쟁은 불평등한 신분제와 사회‧경제적 적폐積弊의 시정을 요구하였고, 이 요구는 어느 정도 수용되는 듯 하였으나 외세의 개입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이 시기 전통가치는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는 자리를 잡지 못한 혼란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김흥락은 경상도 안동 학봉 종가의 11대 종손으로 태어나 여유있는 집안 환경으로 일찍부터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정재 류치명의 제자로서 퇴계 이황의 학맥을 계승하였다. 그는 만물을 공경하는 경敬 사상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그런 까닭에 그는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을 수양하고 퇴계의 성리학을 발전시키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는 예禮를 바탕으로 인의仁義가 바로 선 전통적 가치 질서를 고수하였다. 서구 문명을 철저히 배격한 그는 『조선책략朝鮮策略』과 『서유견문西遊見聞』 같은 책이 전해졌으나 단호한 어조를 그 책들의 수령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김흥락에게 조정에서는 여러 차례 관직을 내렸으나 그는 끝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1894년 그에게 영해부사라는 벼슬이 내려졌을 때 그는 이 벼슬을 사직하면서 국왕에게 몇 가지 사안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그것은 청렴한 인재를 등용할 것, 조세를 경감해 줄 것, 국왕이 검소한 생활로 모범을 보일 것, 경연에 참석하여 자신을 수양할 것, 학문을 숭상하고 학자를 우대할 것 등이었다.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덕을 귀하게 여기고,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김흥락은 만년에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 거리에서 백성들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유교적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본 그는 1895년 69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동의진의 지휘장으로 나서게 된다. 그가 의병장이 된 것은 의병전투를 지휘하여 승리를 거두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지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런 그가 의병 지휘관으로 나섰다는 사실은 그가 평소에 실천하고자 하였던 예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지휘장으로 나선 것은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고, 인의와 도덕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흥락은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사양한 대신에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700명이 넘는 그의 제자들 가운데는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이 40여명이고, 그 가운데는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사람이 10여 명에 달한다.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제자를 양성한 그는 후세에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았다.

Abstract

Kim Heung-rak was a neo-Confucianist, who was born in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and lived during the opening port era. The era he lived was the time the Western powers forcibly demanded trade to the Eastern society, including China and Japan. Joseon also could not help but open doors by coercion of Japan and sign an unequal treaty, and society fell into extreme chaos because of introduction of the Western civilization. This period of Joseon is the time irregularities and corruption were rampant as the maternal relatives of the king carried out power politics. This contradiction became a cause of Donghak Peasantry Revolution in 1894, that a lot of Donghak followers caused revolts demanding to rectify the caste system of society and socially and economically deep-rooted evils. It was the chaotic period that traditional value collapsed in all sectors and new values were not settled yet. In this period Kim Heung-rak was born as the eldest grandson, the 11th descendant, of the Hakbong eldest son’s family in Andong, North Gyeonsang, Korea; he could devote himself only to studying early on in comfortable circumstances. He was a disciple of Jeong-jae Ryu Chi-myeong and succeeded to the academic line of Teo-gye Yi Hwang. He lived his life consistently with an idea of ‘Gyeong(敬)’, respect, which reveres all things. So, he was an admired figure in the community. He devoted himself to cultivating himself and developing neo-Confucianism. Based on ‘Ye(禮)’, manners, he clung to the order of traditional values on which ‘In-ui(仁義)’, benevolence and righteousness, were well established. Thoroughly rejecting the Western civilization, he refused to accept books such as Joseon-chak-ryak and Seo-yu-gyeon-mun, when those books were delivered to him. Although Joseon royal court proposed to him a government post several times, he never entered the government service. When a government post Yeonghae Busa(a governor of Yeonghae) was granted to him in 1894, he resigned from this service and proposed some alternatives to the king, including opening the offices to men of integrity, reducing taxes, setting a good example as a king with a frugal life for people, participating in forums to cultivate himself, and admiring learning and revering scholars. To make the society like this, he advised for everyone to improve themselves ceaselessly, to be good to their parents, to regard highly virtue, to be diligent in reading books and to maintain peace of their mind. In his later years he saw Eul-mi-sa-byeon(incident taking place in the Year of the Ram) and the hair of people cut in the street because of the ordinance prohibiting topknots. Seeing the traditional values ruined, he became a commander of Andong Camp of the unofficial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in 1895, although he was 69 years old then. The reason he became the commander is not to lead campaigns and win victories. He was a symbolic figure revered by many people of the community. The reason he became a commander of the unofficial army was to put Ye(禮) that he tried to put into practice into practice. The reasons he became a commander of the volunteer-army were to save the country in danger and to put In-ui(仁義) and morals into practice. Instead of entering the government service, he cultivated many disciples. Among more than 700 his disciples, more than 40 received a prize as the independence patriots, among which more than 10 were awarded South Korea’s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Although he did not enter the government service, his life that trained disciples became a paragon for the future generations.

참고문헌 (52)

  1. "輔仁稧帖", ~
  2. "孟子", ~
  3. "西山集", ~
  4. "禮記", ~
  5. 권상익, "西山先生 行狀", 西山集, ~
  6. 권오영,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학맥과 이학理學사상", 국학연구, (31), pp.9~58 (2016), 한국국학진흥원
  7. 금장태, "韓末 退溪學統의 正脈 西山 金興洛" (2000), 西山先生記念事業會, 영남사
  8. 김규성, "韓末 退溪學統의 正脈 西山 金興洛" (2000), 西山先生記念事業會, 영남사
  9. 김낙진, "定齋 柳致明과 西山 金興洛의 本心 중시 철학", 율곡사상연구, 16 (2008), 율곡학회
  10. 김미영, "종가의 의례전통과 그 계승 - 서산 김흥락의 <가제의家祭儀>를 중심으로", 국학연구, (31), pp.125~156 (2016), 한국국학진흥원
  11. 김순석, "근대 유교개학론과 유교의 정체성" (2016),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12. 김언종, "국역 서산선생문집 1" (2016), 한국국학진흥원
  13. 김정기, "초점 제국주의 침략의 어제와 오늘 자본주의 열강의 이권침탈 19세기 말 20세기초 미.일.러 청의 이권침략 총정리", 역사비평 (1990), 역사비평사
  14. 김정모, "韓末 退溪學統의 正脈 西山 金興洛" (2000), 西山先生記念事業會, 영남사
  15. 김진윤, "甲午東學農民運動의 목표와 방향으로서의 弊政改革案", 민족사상, 5(3), pp.135~186 (2011), 한국민족사상학회
  16. 김학수, "조선시대 사대부士大夫 가풍家風의 계승 양상 연구 - 의성김씨 학봉가문鶴峯家門을 중심으로", 국학연구, (31), pp.59~124 (2016), 한국국학진흥원
  17. 김흥락, "국역「서산선생문집」6" (2016), 한국국학진흥원
  18. 김흥락, "국역「서산선생문집」2" (2016), 한국국학진흥원
  19. 김흥락, "국역「서산선생문집」1" (2016), 한국국학진흥원
  20. 김흥락, "국역「서산선생문집」4" (2016), 한국국학진흥원
  21. 김흥락, "국역「서산선생문집」8" (2016), 한국국학진흥원
  22. 김희곤, "西山 金興洛(1827~1899)의 의병항쟁", 한국근현대사연구, 15 (2000), 한국근현대사학회
  23. 김희곤, "韓末 退溪學統의 正脈 西山 金興洛" (2000), 西山先生記念事業會, 영남사
  24. 노대환, "세도정치기 산림의 현실인식과 대응론 ― 노론 산림 吳熙常·洪直弼을 중심으로 ―", 한국문화, (42), pp.63~85 (2008),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5. 박경환, "서산 김흥락 학맥의 전승과 발전 - 근대 전환기 서산 문도의 현실 인식과 실천", 국학연구, (31), pp.157~214 (2016), 한국국학진흥원
  26. 박현모, "세도정치기(1800-63)의 정국운영과 언론 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6(1), pp.161~185 (2007),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7. 서종태, "辛酉迫害의 정치적 배경 淸南系의 개혁활동과 관련하여", 교회사연구, 18 (2002), 한국교회사연구소
  28. 송양섭, "임술민란기 부세문제 인식과 三政改革의 방향", 韓國史學報, (49), pp.7~53 (2012), 고려사학회
  29. 송재소, "<기조발표문> 19세기 안동유림의 활동과 서산학파, 서산 김흥락의 학문 사상과 서산학파", 학술대회 자료집 (2016), 한국국학진흥원
  30. 신복룡, "서세동점기의 서구인과 한국인의 상호 인식", 한국문학연구, (27), pp.62~93 (2004), 한국문학연구소
  31. 안병주, "韓末 退溪學統의 正脈 西山 金興洛" (2000), 西山先生記念事業會, 영남사
  32. 앤드루 고든, "현대일본의 역사 1" (2015), 도서출판이산
  33. 禹龍濟, "大院君 執政期 書院撤廢와 成均館 整備計劃", 교육사학연구, 2ㆍ3 (1990), 교육사학회
  34. 윌리엄 T. 로, "하버드 중국사 청 중국 최후의 제국" (2014), 너머북스
  35. 유정기, "韓末 退溪學統의 正脈 西山 金興洛" (2000), 西山先生記念事業會, 영남사
  36. 이만도, "韓末 退溪學統의 正脈 西山 金興洛" (2000), 西山先生記念事業會, 영남사
  37. 이우성, "韓末 退溪學統의 正脈 西山 金興洛" (2000), 西山先生記念事業會, 영남사
  38. 이해영, "韓末 退溪學統의 正脈 西山 金興洛" (2000), 西山先生記念事業會, 영남사
  39. 이희환, "이방인의 눈에 비친 제물포 Ⅰ-개항 전후부터 청일전쟁 시기까지-", 역사민속학, (26), pp.173~208 (2008), 한국역사민속학회
  40. 임성수, "18세기 후반 田結稅징수와 중간비용 운영-『賦役實摠』을 중심으로-", 韓國史學報, (64), pp.169~220 (2016), 고려사학회
  41. 정의, "근대 일본의 서구숭배와 국수주의- 메이지(明治)유신부터 청일전쟁까지를 중심으로 -", 日本思想, (27), pp.277~301 (2014), 한국일본사상사학회
  42. 조동걸, "韓末 退溪學統의 正脈 西山 金興洛" (2000), 영남사
  43. 조동걸, "대한제국의 의병전쟁" (2011), 역사공간
  44. 조성환, "진화론과 근대 중국의 민족주의 - 양계초와 장병린의 민족사상을 중심으로", 정치사상연구, 16(1), pp.194~217 (2010), 한국정치사상학회
  45. 조순, "東학의 發生과 그 意味", 동학연구, (18), pp.1~18 (2005), 한국동학학회
  46. 최진욱, "丙寅洋擾 전후 申櫶의 대내인식과 개혁론", 韓國史學報, (42), pp.169~199 (2011), 고려사학회
  47. 한국국학진흥원, "서산 김흥락의 학문 사상과 서산학파", 2016 한국학학술대회 발표자료집 (2016)
  48. 황위주,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예인식文藝認識과 한시창작漢詩創作의 양상樣相", 국학연구, (31), pp.215~250 (2016), 한국국학진흥원
  49. "독립운동사자료집 1", 국사편찬위원회, ~ (1971)
  50. 村上重良, "國家神道と民衆宗敎" (1982), 吉川弘文館
  51. 田中彰, "明治維新と天皇制" (1992), 吉川弘文館
  52. 毛利敏彦, "明治維新の再發見" (1993), 吉田弘文館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4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