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무성서원武城書院의 건립과 운영 ―제향인물과 사액과정을 중심으로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Museong Seowon(武城書院) in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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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615년 전라도 태인현 선비들은 700여 년 전에 태산군 태수로 부임하여 이 고을을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최치원과, 70여 년 전에 태인현감으로 6년간 재임하면서 선정을 베푼 신잠을 함께 모시는 태산서원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1630년에 태인 고을의 향현인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을 추배하였으며, 1675년에는 김관의 추배가 이어졌다. 추배된 인물들은 영광정씨 여산송씨 경주정씨 도강김씨로, 생몰시기와 성씨는 각각 다르지만 서로 가까운 친인척이었다. 태산서원은 1696년(숙종 22)에 무성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는데, 사액명 ‘무성武城’은 신라 때의 이 지역 고을 명칭이면서 공자의 제자 자유가 다스렸다는 고을명이기도 하다. 사액서원이 된 무성서원은 이제 종전과는 격이 달라져 더 이상 태인 고을만의 서원이 아니었다. 태산서원 건립당시 제향한 최치원 신잠과는 달리 후에 추배된 인물들은 모두 태인의 향현들로 이들의 벼슬은 각각 정언 현령 목사에 머물거나,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진사시 입격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치원을 모신 무성서원에 함께 배향되면서, 그 후손들은 명성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이를 적극적으로 주도한 도강김씨는 이후 태인 지역 향촌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갈 준비를 갖추어 가게 되었다.
Abstract
In 1615, the scholars of Town Tain built Taesan Seowon(泰山書院) where they dedicated a shrine to Choi Chiwon(崔致遠)-a person who was a governor-general of County Taesan more than 700 years ago- and Shinjam(申潛)-who worked wisely as a governor of Town Tain for 6 years, about 70 years ago. After 15 years, 1630, they enshrined more local sages of Town Tain such as Jeong Geuk-in(丁克仁), Song Serim(宋世琳), Jeong Eon-Chung(鄭彦忠), Kim Yak-muk(金若默), leading to Kim Gwan(金灌)’s enshrinement in 1675. These sages’ family were Young-gwang Jeong's family, Yeosan Song's family, Gweongju Jeong's family, and Dogang Kim's family, and even their family names don’t match each other and they lived in different time and ages, they were the close family. Taesan Seowon got a title board with its new name ‘Museong Seowon(武城書院)’ on it from the government in 1696(King Sukjong 22). The name ‘Museong(武城)’ was Town Tain’s old name in Silla Dynasty, but it was also the name of a town where Jaayu, the student of Confucius, ruled wisely as a town governor. Museong Sewon was now not in the same class from before, and it was no longer the town’s Seowon since it was publically authorized by the government, with a new name and a new title board. Unlike Choi Chiwon and Shinjam, who were enshrined at the beginning of the construction of Taesan Seowon, people who were dedicated a shrine later were local sages of Tain, who only got official jobs that were not that high- such as Jeong-eon, Hyeolleong, Moksa, or didn’t even work as an official, but only passed Literary Licentiate Examination. However, by being enshrined with Choi Chiwon at Museong Seowon, their descendants were able to lift their families’ reputation. Especially Dogang Kim's family, who actively took the lead and succeeded in enshrining Kim Gwan, was ready to take the upper hand in the local governmental society of Town 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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