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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의 곡례哭禮 정비와 그 의미

The Modification of the Rite of Wail in Gukjo-SangryeBopyeon and its Mean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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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국조오례의』에서 정비된 국상의례는 이후 국상의 과정에서 재검토되었고, 18세기에 『국조상례보편』으로 재성문화되었다. 국상의 정기적인 곡례는 상례의 진행에 따라 변화되면서, 슬픔을 줄여 일상으로 복귀하는 유교 상례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매우 복잡한 문제였다. 이러한 곡례의 시행을 위해, 국상의 실무자인 관료학자들은 『가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국조오례의』를 해석하고 보완했다. 이 과정에서 『가례』와 『국조오례의』 곡례 구조의 차이는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가례』의 ‘조석곡전상식’은 장례 전후에 그대로 적용되는 반면, 『국조오례의』에서는 장례 전 ‘조석곡전급상식’과 장례 후 ‘조석상식의’로 구분되었다. 따라서 『국조오례의』는 고례를 근거로 장례 이후의 의절에만 배례를 규정하였다. 『국조상례보편』에서 조석전에 배례를 추가하지 않은 것은 고례를 따르는 『국조오례의』를 계승한 것이었다. 『가례』를 근거로 배례를 보충하려는 논의가 제기되었지만, 『국조오례의』가 명확히 고례를 따른 경우라면 『가례』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조상례보편』의 곡례 절차는 17세기 국상의례의 변화를 수용하여 재성문화하는 방식으로 정비되었다. 첫째, 『국조상례보편』에서 조석곡전과 상식의 시작은 성빈 이후로 규정되었다. 『국조오례의』는 습 이후 영좌를 설치하면서 조석곡전과 상식을 시작했는데, 이에 대한 예학적 비판이 제기되면서 17세기 국상에서는 ‘성빈’ 후로 변화되었다. 『국조상례보편』은 이러한 관행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둘째, 『국조상례보편』에서는 『국조오례의』의 ‘연후무곡’이 폐기되면서, 곡례의 기간과 범위가 확대되었다. ‘연후무곡’은 서서히 곡례를 줄이면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상례 절차에 어긋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연제 후에도 친행의 경우에는 효와 인정에 근거하여 곡을 행했다. 『국조상례보편』은 이러한 관행을 근거로 친행과 섭행에 상관없이, 사시제와 삭망제 등의 곡례를 담제까지 연장하였다. 셋째, 조석곡 의주를 새로 마련하여, 초우제에 조석전, 연제에 조석곡, 상제에 상식곡을 중단하는 사가례의 곡례 절차를 국상에 반영하였다. 이러한 곡례의 정비는 슬픔을 줄여가는 상례의 의미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Abstract

The Ritual of National Funeral, which was maintained in Gukjo-Oryeeui, was later reviewed in the course of the National Funeral, and was retextualized in Gukjo-SangryeBopyeon in the 18th century. Regular Rite of Wail on national Funeral were changed according to the progress of the funeral, and symbolically showed the principle of Confucian funeral to reduce sadness and return to daily life. In the process of implementing these acrobatics, bureaucrats, who are practitioners of the state, interpreted and supplemented Gukjo-Oryeeui based on Family Rite's research. So Rite of jeon and sangsik in morning and evening was started after the sungbin. By discarding the principles of 'no Wail after yeonje', the period and scope of Rite of Wail was expanded. Through supplementation with Rite of Wail in morning and evening, the meaning of funeral ceremony to reduce sorrow was realized. The considerable changes have already been made from the 17th century, and Gukjo-SangryeBopyeon has actively accepted these practices and reorganized the prece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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