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전쟁포로, 굴절된 기억과 서사적 재구
Imjin War and POW, Altered Memories and Narrative Reconstit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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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삼국의 인민을 전쟁의 광기로 몰아넣었다. 수많은 병사가 전쟁터에서 죽어갔고, 힘없는 백성은 전란을 피해 전국으로 떠돌았다. 그러다가 전쟁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잡혀간 조선인은 최대 10만 명쯤 되는데, 그 중 7,500명 정도만 귀환할 수 있었다. 이들의 귀환 경로는 대략 세 가지였다. 첫째는 錦溪 魯認처럼 자력으로 탈출한 경우다. 둘째는 睡隱 姜沆과 月峰 鄭希得처럼 일본인의 도움으로 돌아온 경우다. 셋째는 조선에서 파견한 回答兼刷還使가 데리고 귀국한 경우이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자신의 포로체험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여기서는 姜沆의 『看羊錄』과 鄭希得의 『海上錄』, 그리고 최척의 구술을 토대로 하여 서사적으로 재구한 趙緯韓의 「崔陟傳」을 주요 텍스트로 삼아 검토하였다. 지금까지 이들 포로체험 實記類는 사실의 기록이란 측면에서 다루어져왔다. 하지만 귀국포로들은 자신의 굴욕적인 체험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자기 방어기제를 끊임없이 작동시키며 일정한 굴절 현상을 일으켰다. 자신에게 불리한 과거는 기억에서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아예 배제해버렸던 것이다. 또한 뒷사람들이 이들의 포로체험 기록을 출판물로 公刊할 때도 유사한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과거의 기억이 굴절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 결과 중앙정계에 몸담았던 강항은 『간양록』을 통해 자신의 귀국을 ‘충절의 실천’으로 돋보이도록 만들고, 재지사족이었던 정희득은 『해상록』을 통해 자신의 귀국을 ‘효심의 실천’으로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최척전」의 주인공이기도 한 최척은 삼국을 떠돌아다니다가 귀국한 자기 부부의 체험을 구술할 때, 부인에게 드리워진 ‘훼절의 의혹’을 불식시키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작가 조위한은 이런 구술 사실을 바탕으로 그들 부부의 전란체험을 서사적으로 재구했던 것이다. 이런 검토의 결과, 포로체험을 담은 실기류는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 오히려 ‘기억의 서사’라는 시각에서 보다 섬세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Imjin War drove nationals of three countries in East Asia into the insanity of war. Countless soldiers were killed in the battle fields and powerless ordinary people had to wander all over the country to escape the war. Meanwhile some people got caught as prisoners of war (POW) and were taken to Japan. As many as one billion people from Joseon were taken to Japan during Imjin War and only 75,000 people among them could return to their home country. There were approximately three return paths for these people. First, they escaped by themselves, e.g. in the case of Geumgye Noin. Second, they could escape with the help of Japanese people, e.g. the cases of Sueun Gang-hang and Walbong Jeong-Heedeuk. Third, they could return to Joseon with Hoidapgyeom Seohwansa, who were envoys of Joseon to Japan. Some of them kept a record of their experience as POWs (prisoners of war). Here I have examined as my main texts Gang Hang's Ganyangrok, Jeong Hee-deuk's Haesangrok, and Jo We-han's Choiceokjeon, which was reconstituted based on Choi Cheok's oral statement. The records of POWs'(prisoners of war) experiences were treated as the record of the truth until now. However returned POWs activated defense mechanism incessantly in the process of recollecting their humiliating experiences and bent the truth to a certain degree. They made dim or even excluded for some past events that were disadvantageous to them. Also similar defense mechanism was activated when future generations published these POW records. That is why past memories went through alterations. As a result, Gang Hang who worked for central government made his returning home look like "accomplishment of fidelity" through Gangyangrok, Jeong Hee-deuk, who was a provincial nobleman made his returning home look like "practice of filial piety" through Haesangrok. When Choi Cheok, who is the hero of Choicheokjeon, dictated he and his wife's experience while wandering three countries, he made a great effort to eliminate the doubt towards his wife's faithfulness. Jo We-han reconstituted he and his wife's war experience based on this oral statement. In conclusion, these documents that have POW experiences need to read with deliberate care in terms of 'narrative of memories' rather than 'record of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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