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海印寺 法寶展 毗盧遮那佛 조성과 檀越세력-墨書銘에 대한 검토를 중심으로
The Making of the Vairocana Buddha Statue in Haein sa (海印寺) Beoppo jeon (法寶殿) in the 9th Century and Tanyue (檀越) Forces -Focusing on the Examination of Mukseomyeong (墨書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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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2005년에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 복장에서 발견된 묵서명을 새롭게 판독한 다음 누구들이 비로자나불을 조성한 단월이었으며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을 하였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검토한 것이다. 검토한 결과를 간단하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우측 묵서명 맨 아래 두 글자의 판독이 어려웠으나 검토한 결과 그것은 ‘事也’로 쓰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을 마치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묵서명 전체가 楷書로 쓰여 있으나 두 글자만이 초서로 쓰여 있는데, 이는 공간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묵서명에 쓰인 大角干은 기왕에 알려진 것처럼 魏弘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죽은 자를 추복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로자나불을 조성한 것이라면 이 때 위홍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비는 眞聖王이 아니다. 그 이유는 제작 년대가 진성왕이 활동하던 시대와는 너무 앞서고 있기 때문이며, 여왕이 되기 이전이므로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넷째로 憲康王이 비로자나불을 조성한 목적은 그의 祖父와 祖母를 추복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렇게 한 것으로, 묵서명에 보이는 大角干은 金啓明이고 妃는 그의 처인 光和夫人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경문왕으로 이어진 왕실의 영원함을 기원할 필요성에서 이와 같은 비로자나불을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섯째로 헌강왕이 해인사에 이와 같은 불사를 주관하게 된 계기는 崔致遠의 母兄인 賢俊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신라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헌강왕 사후에는 그를 위한 불사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Abstract
Some new understandings learned through Mukseomyeong, which is an explanatory legend with black ink, are as follows. First, two words written on the bottom right-corner of Mukseomyeong were hard to decipher, but turned out to be ‘事也’ as a result of careful examination. And ‘事也’ is interpreted as meaning ‘finish the work’. Secondly, the word ‘Daegakgan’ (大角干) written on Mukseomyeong does not mean Wi-hong (魏弘) as previously believed. The reason is that if the Vairocana Buddha Statue was built for the purpose of praying for the deceased, Wi-hong was alive at that time. Thirdly, the word ‘Bi’ (妃) written on Mukseomyeong does not refer to Queen Jinseong. The reason is that she did not have a high enough position to make the Vairocana Buddha Statue at that time. Fourthly, the Vairocana Buddha Statue was made by King Hun-Gang (憲康王) to pray for his grandparents, which means that grandfather is Gimgyemyeong (金啓明) and the grandmother is his wife Lady Gwanghwa (光和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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