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예안-영주-봉화를 잇는 한 양반의 생활 경계 —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에 기록된 김택룡金澤龍의 생활공간 복원
A Countryside Literati’s Boundary: The Connection between Yean, Yeongju, and Bonghwa in 17th Century Joseon Korea ―Reconstructing Joseongdang Kim Taek-ryong’s Living Space as Documented in 『Joseongdang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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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당操省堂 김택룡⾦澤⿓(1547~1627)은 경제력을 갖춘 지역 양반이었기에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에는 노비와 가족을 동원한 농사일과 토지와 노비 등을 거래한 매매 활동 즉 생업生業으로서의 경제 활동을 포함해, 떨어져 사는 가족들과의 통신 및 선물 그리고 지역 사람들을 방문한 흔적 및 인근 유력자들과의 만남 등 여러 맥락의 교유 활동이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생업과 교유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짚어보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경제 활동과 교유 활동 모두 ‘이동’과 ‘방문’ 그리고 ‘통신’이라는 물리적 접촉을 매개로 이루어지기에, 일기에 기록된 유관 장소를 파악하고 그에 관한 정보를 정리할 경우 생활권역의 반경라든지 생업 및 교유 활동의 물리적 범위를 이해하기 위한 구체적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일기에서 언급되는 경험적 ‘장소(place)’ 는 단순히 기록자가 활동한 공간의 물리적 ‘위치(location)’에 관한 정보일 뿐만 아니라, 기록자가 향유한 다채로운 생활 양상을 물리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끔 하는 단서로써의 역할 또한 하기 때문이다. 조성당일기에 기록된 여러 장소 가운데서도 김택룡은 일가의 세거지로서 한곡寒谷(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 일대)의 본가와 주로 ‘산장山庄’으로 거론되는 요산腰山(지금의 봉화군 봉화읍 문단2리 일대)의 별업을 중심 거주 공간으로 삼고, 매년 두 곳을 오가며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보자면 김택룡의 생활 권역은 크게 한곡 중심의 예안(과거의 宣城) 권역과 요산 중심의 영주(과거의 榮川)-봉화(과거의 奈城) 권역으로 나누어진다. 예안 권역에 속하는 여러 장소를 매개한 생활의 외연과 영주-봉화 권역의 장소를 매개한 생활의 외연을 비교하고, 해당 장소들을 매개로 이루어진 생업 및 교유의 흔적을 공간적 차원에서 재현할 수 있다면, 예안-영주-봉화를 잇는 김택룡의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일기에 기록된 여러 장소를 점點(dots)으로 찍고, 점으로 찍은 장소들 사이를 선線(lines)으로 연결하고, 장소들 사이의 위상을 파악하기 위한 면面(faces)을 전자지도에 구현하는 실험적 시도를 진행함으로써, 조성당일기에 기록된 김택룡의 생활을 공간적 차원에서 해부할 수 있는 기초 자원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데이터를 매개로 조선시대 일기를 꼼꼼하게 독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자, 조선시대 연구를 위한 기초 자원을 디지털 포맷으로 가공·공유하고자 하는 디지털 인문학적 시도에 해당한다. 이 글은 그러한 전자지도 구현 과정에서의 인문학적 문제의식과 그 논리적 절차를 정리·제시하고, 실제 결과물로서 전자지도와 공간 데이터를 웹상에 구현한 내용을 기술함으로써, 여타 연구자들에게 해당 데이터를 공유하고 유관 연구에 활용될 수 있게끔 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 글을 통해 제시한 전자지도와 공간 데이터가 추후 조성당일기에 기록된김택룡의 생업 및 교유 활동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부하는 데 단서가 되고, 더 나아가 17세기 예안-영주-봉화 권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 자원으로 활용된다면, 본 연구가 기초 연구로서 지닌 학술적 의미 또한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Abstract
Joseongdang (操省堂) Kim Taek-ryong (⾦澤⿓, 1547~1627) was a countryside literati with significant economic power. Joseongdang Diary (操省堂⽇記) provides rich documentation of various aspects of his life, including economic activities such as farming and trading land for nobles and family members, correspondence and gifts exchanged with distant family members, visits to local people, and meetings with local influencers. Both economic and social activities are mediated through physical contact, whether through movement, visitation, or correspondence. Therefore, identifying relevant places recorded in the diary and organizing information about them can provide a concrete basis for understanding the extent of the living area and the physical scope of livelihood and social activities. While there are many ways to interpret these aspects of daily life, this approach can offer valuable insights. In a diary, the experiential ‘place’ is more than just information about the physical ‘location’ of the writer’s activities; it also provides clues to the physicality of various aspects of the writer’s life. Therefore, analyzing the places referenced in the diary can help to illuminate not only the writer’s movements but also the physical contexts of their economic and social activities. Among the various locations recorded in the Joseongdang Diary,Kim Taek-ryong appears to have primarily lived in two main residences: the family’s main house in Hangok (寒谷, which is located in today’s Taegok-ri, Yean-myeon, Andong-si) and a side business in Yosan (腰山), which is located in today’s Mundan-2-ri, Bonghwa-eup, Bonghwa-gun). The latter is often referred to as a ‘mountain lodge (山庄)’, and Kim traveled between the two locations every year. Based on the Joseongdang Diary, Kim Taek-ryong’s living area can be roughly divided into two main regions. The first is the Yean area (formerly known as 宣城), which centers around Hangok (寒谷). The second is the Yeongju area (formerly known as 榮川) and the Bonghwa area (formerly known as 奈城), which center around Yosan (腰山). The aim of this research is to generate spatial dataset and a digital map that reconstructs Kim Taek-ryong’s life as documented in the Joseongdang Diary. To achieve this, location data from the diary was used to create a digital map that connects the various places where he lived and worked, with geographic features added to better understand their spatial context. This spatial curation allows for a more detailed examination of his daily routines and movements, which can provide valuable insights for future research into the social and economic history of 17th century Joseo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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