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경남 밀양군 이병곤李炳鯤의 질병과 한의학 치료 —『퇴수재일기退修齋日記』(1906~1948)를 중심으로
Japanese colonial era Disease and Oriental Medicine Treatment of Lee Byung-gon, Miryang-gun, Gyeongsangnam-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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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는 일제강점기 경남 밀양군 부북면에 세거하였던 여주 이씨 집안의 일기인 『퇴수재일기退修齋日記』(1906~1948)를 통해 퇴수재退修齋 이병곤李炳鯤 의 질병과 치료를 분석하였다. 『퇴수재일기』는 이병곤이 1906부터 1948까지 약 42년간 쓴 일기로 날씨, 농업경영, 학교 운영, 교육, 관혼상제, 지방사회의 시국에 대한 견문, 식민정책, 질병, 치료, 전염병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일제강점기 농촌지역이었던 경남 밀양군은 경부철도 정차역과 낙동강을 통한 비옥한 토지 등으로 일제 초기부터 일본인의 이주가 많았다. 그 결과1910년대 초부터 밀양군에는 일본인 의사가 개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관립·공립 병원은 1930년대 후반에 설립된다. 일제는 의료 공백을 메우기위해 의생과 공의를 두었다. 밀양군의 의료기관 중 한의학치료를 담당하던의생이 가장 많았다. 『퇴수재일기』속 이병곤과 그의 주변 인물들은 여러 질병에 한의학치료, 근대병원치료, 민간치료, 미신치료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가운데가장 많이 사용한 치료법은 한의학이었다. 1906~1932년 사이 이병곤은 밀양읍내 뿐만 아니라 인근 부산, 대구, 영천의 이름난 의원과 의생을 총동원하여질병에 대응하였다. 근대병원치료는 치과와 외과적인 처치가 필요할 때만받았다. 이병곤은 자신의 병에는 미신치료를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병에는칠성에게 기도하였다. 1939~1948년 사이 이병곤의 질병 치료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일제 말 전시체제기 한약재의 부족 현상이 심하여 약을 짓기가 어려웠다. 둘째, 한의학에 대한 조예가 상당하여 『동의보감』·『제중신편濟衆新編』·『방약합편方藥合編』 등의 의서를 참고하여 직접 치료법을 찾았다. 셋째, 자신의 질병에 대해 기록 해 두었다가 활용하였다. 밀양군에는 말라리아, 콜레라, 천연두, 성홍열, 적리,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이 발생했다. 밀양군에서는 방역사무소를 설치하고, 예방 주사 증명 유무를확인했다. 밀양청년회에서 일방역회一方疫會를 조직하고, 자위단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Abstract
In this paper, oriental medicine treatment was analyzed through the diary of the Yeoju Lee family, which lived in Bubuk-myeon, Miryang-gun, Gyeongsangnam-do, Japanese colonial era (1906~1948). Toesujae Diary is a diary written by Toesujae Lee Byung-gon for about 42 years from 1906 to 1948, and contains various contents such as weather, agricultural management, school management, education, ceremonial occasion, knowledge of local society, colonial policy, disease, treatment, and infectious diseases. Miryang-gun, Gyeongsangnam-do, which was a rural area in Japanese colonial era, has had a lot of Japanese migration since the early days of Japanese colonial rule due to the station of Gyeongbu Railway and fertile land through the Nakdonggang River. As a result, Japanese doctors have been opening in Miryang-gun since the early 1910s. However, government and public hospitals were established in the late 1930s. The Japanese colonial rule made medical treatment and righteousness to fill the medical gap. Among the medical institutions in Miryang-gun, medical students who were in charge of oriental medicine treatment were the most. Lee Byung-gon and the people around him in the “Toesujae Diary” used various methods such as oriental medicine treatment, modern hospital treatment, folk treatment, and superstition treatment for various diseases. Among them, the most frequently used treatment was oriental medicine treatment. Between 1906 and 1932, Lee Byung-gon responded to the disease by mobilizing all famous clinics and medical students not only in Miryang-eup but also in nearby Busan, Daegu, and Yeongcheon. Modern hospital treatment was received only when dental and surgical treatment were needed. Lee Byung-gon did not provide superstitious treatment for his illness, but prayed to Chil-seong for his mother’s illness. Between 1939 and 1948, disease treatment had three characteristics. First, it was difficult to make medicine due to the severe shortage of herbal medicines during the wartime period at the end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econd, due to the considerable knowledge of oriental medicine, he found a cure himself by referring to medical books such as Donguibogam, Jejungsinpyeon, and Bangjapyeon. Third, he recorded and used his disease. Infectious diseases such as malaria, cholera, smallpox, scarlet fever, Jeokri, and typhoid occurred in Miryang-gun. Miryang-gun established a quarantine office and checked whether there was a proof of vaccination. The Miryang Youth Association organized a daily quarantine association and organized a self-defense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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