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기 경상도지역 사족의 상,제례 시행양상과 의미
The implementation and meaning of aristocrat’s rituals in Gyeongsang-do during the Japanese Invasion(1592)
0
조회
0
다운로드
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시기는 혼란으로 인해 禮制가 문란해졌던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전해주는 琴蘭秀의 『惺齋日記』, 鄭慶雲의 『孤臺日錄』, 都世純의 『龍蛇日記』, 張顯光의 『避難錄』과 「奔竄中事亡儀略」과 같은 경상도 지역의 일기자료를 중심으로 전란 당시의 喪禮와 祭禮가 어떻게 수행되었는가에 대해 검토하면서 약 7년간의 전란기를 단순히 ‘예학의 공백기’로 일반화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조는 전란 중에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음에도 상복입은 백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상례가 문란해진 것이라 의심했지만, 장현광이 피난중에 상례를 시행했던 모습을 보면 피난중인 백성들이 상복을 입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기자료를 바탕으로 경상도 지역의 상황을 살펴보면 전란 피해로 제수를 마련하기 어렵더라도 간소하게 제사를 지속하려하였고, 피난 중에도 어렵게 상례를 수행하려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비록 전란기에 이론적 측면의 예학발전은 어려웠지만, 경험적 측면에서 비일상적 상황에서의 의례경험을 축적해나가고 있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Abstract
In general, it has been recognized that moral and rituals were disturb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1592). However, as a result of reviewing the cases focusing on the personal diary record written by aristocrats in Gyeongsang-do, which conveys the situation at the time, people faithfully carried out funeral rites and rituals. Therefore, it was confirmed that there are cases where it is difficult to generalize the seven-year war period as simply a 'inactivity period of morals and rituals'. King Seonjo suspected that even though there were many deaths during the war, the funeral culture was disrupted, citing that no people were seen in mourning. However, it was not easy for the evacuating people to wear mourning clothes when Jang Hyun-kwang conducted a funeral during evacuation. Looking at the situation in Gyeongsang-do based on the personal diary, it was found that even if it was difficult to prepare ancestral rites due to the damage caused by the war, they tried to continue the ritual, and even during evacuation, they tried to carry out funeral rites. Through this, it can be summarized that although it is difficult to say that there was a theoretical development during the war, it was accumulating ritual experiences in unusual situations from an empirical perspective.
참고문헌 (28)
- 고영진, "조선중기 예학사상사" (1995), 한길사
- 남재주, "조선후기 영남 예학 연구" (2019), 도서출판 3
- 박주, "조선시대의 정표정책" (1990), 일조각
- 이연순, "성재일기 ―16세기 재지 사족의 올곧은 삶과 문화의 기록" (2020), 은행나무
- 남명학연구원, "고대일록" (2009), 태학사
- 한국국학진흥원, "성재일기" (2019), 영남사
- 김사엽, "김사엽전집 13" (2004), 박이정
- 권내현, "역사학의 관점에서 본 16세기 유연 사건", 민족문화연구, (88), pp.147~172 (2020), 민족문화연구원[DOI]
- 김경숙, "16세기 사대부 집안의 제사설행과 그 성격 ― 李⽂楗의"默齋⽇記"를 중심으로", 한국학보, 98 (2000), 일지사
- 김성우, "임진왜란 초기 制勝方略戰法의 작동 방식과 상주 북천전투", 한국사연구, (163), pp.221~257 (2013), 한국사연구회
- 김성우, "임진왜란 시기 구미지역의 참상과 전쟁의 극복 양상", 역사학보, (230), pp.1~37 (2016), 역사학회[DOI]
- 김성우, "임진왜란과 1593∼1594년 계갑대기근 - 경상도 성주 도세순 집안을 중심으로 -", 한국사연구, (188), pp.217~256 (2020), 한국사연구회[DOI]
- 김윤정, "조선중기 가묘제와 여성제례의 변화", 국학연구, (14), pp.451~488 (2009), 한국국학진흥원[DOI]
- 김정운, "17세기 경상도 사족의 혼례 방식", 한국사상사학, (56), pp.1~26 (2017), 한국사상사학회[DOI]
- 노영구, "전쟁과 일상 - 고대일록(孤臺日錄)을 통한 임진왜란 이해 -", 역사와 현실, (64), pp.17~31 (2007), 한국역사연구회
- 문숙자,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2005), 경인문화사
- 박인호, "여헌학의 전개와 수용" (2010), 보고사
- 박종천, "성재일기" (2019), 한국국학진흥원
- 송재용, "黙齋日記와 眉巖日記를 통해 본 16세기의 冠·婚·喪·祭禮",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30, pp.303~320 (2010), 근역한문학회[DOI]
- 신진혜, "임진전쟁기 종묘의 소실과 재건 과정 연구", 역사학보, (240), pp.377~416 (2018), 역사학회[DOI]
- 신진혜, "임진왜란기 張顯光(1554~1637)의 피난 중 喪․祭禮 시행양상", 한국실학연구, (40), pp.477~512 (2020), 한국실학학회
- 원창애, "『고대일록』을 통해본 함양 사족층의 동향", 南冥學硏究, (33), pp.229~260 (2012), 경남문화연구원
- 이성임, "16~17세기 일기의 傳存 양상", 조선시대사학보, (89), pp.41~75 (2019), 조선시대사학회[DOI]
- 이훈상, "어느 지방 이서의 임진왜란 증언과 전승 -경상도 인동의 향리 劉席珍과 그의 임진왜란 일기-", 영남학, (21), pp.125~174 (2012), 영남문화연구원[DOI]
- 장동우, "旅軒 張顯光의 禮說과 禮學的 問題意識", 유교사상문화연구, (24), pp.103~125 (2005), 한국유교학회[DOI]
- 장동우, "조선후기 가례 담론의 등장 배경과 지역적 특색 -『주자가례』에 대한 주석서를 중심으로", 국학연구, (13), pp.97~128 (2008), 한국국학진흥원[DOI]
- 정해은, "임진왜란 시기 경상도 사족의 전쟁 체험 - 함양 양반 정경운을 중심으로 -", 역사와 현실, (64), pp.65~100 (2007), 한국역사연구회
- 최은주, "조선시대 임진왜란 일기자료의 현황과 傳存 양상", 한국민족문화, (77), pp.25~59 (2020), 한국민족문화연구소[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