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동원체제와 퇴계학: 아베 요시오와 박종홍의 연속성
The Characteristics of Toegyehak in the Wartime Mobilization System: Abe Yoshio’s View vs. Park Jong-Hong’s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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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식민교육은 병영과 학교, 군대와 교육의 일치를 지향하는 교육체제였다. 특히 1930~40년대의 전시동원체제를 규정하자면 이는 철학・사상・문화・교육의 파멸공간 내지 불모지대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그 파멸과 불모의 지점에서 퇴계학이 일본의 관제・관변 학자들에 의해 호평 속에 강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퇴계학의 본연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퇴계를 앞장세워 저비용-고효율의 식민교육을 추진하기 위함이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로 아베 요시오가 『이퇴계』(1944)에서 강조한 “반도제일의 교학자”이자 “도의철학의 창시자”로서의 퇴계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퇴계의 행실과 사상을 모범으로 삼아 조선인 모두가 황국신민으로서의 심혼을 연마하자는 것이 아베 요시오의 논지였다. 그야말로 퇴계를 전쟁인문학의 선봉에 내세우고 퇴계를 빙자하여 전쟁과 죽음을 추동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해방이후의 퇴계학은 해방이전의 퇴계학을 비판적으로 극복하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아베 요시오의 퇴계론을 반복・재생산하는 가운데 퇴계를 “도의의 사표”로 내세운 박종홍의 퇴계론을 들 수 있다. 해방이후의 퇴계학 연구에서 전시동원체제의 잔영을 걷어내지 못한 채 주체성 확립과 국민정신 교육을 표방했다는 것은 한국교육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Abstract
The word colonial education was used in a military context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Above all, it is stated that the mobilization system in wartime can be named destruction and sterility in a viewpoint of philosophy, thought, culture, and education during 1930~1940’s Chosun. Paradoxically, Toegyehak was emphasized with a favorable comment by Japanese government circles and official regulation at the age of sterility. It is not for an interest in intrinsic view on Toegye studies but for promoting low-cost/high-effective colonial education with Toegye at the head. It could be a representative case that Abe Yoshio’s YITOEGYE(1944) stressed Toegye as a distinguished scholar in Korean peninsula and the founder of moral philosophy. Abe Yoshio’s point of an argument was that all Korean should study hard with whole heart and soul as a Japanese subject by making after a model of Toegye’s behavior and ideology. It was indeed a drive for war and death with Toegye in the vanguard of warfare humane studies. It is highly regrettable that the Toegyehak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could not overcome critically that of before the liberation. An representative case was a study of Toegyehak & outstanding project by Park Jong-Hong which put up Toegye a paragon of morality. It is a sorrowful self-portrait that Korean education established national identity and moral education without criticism on the colonial context in the study of Toe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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