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初期石窟에 나타난 法華信仰의 특징 -北魏時代를 중심으로-
The Characteristics of the Lotus Belief in Early Caves Built in China - in Northern Wei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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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중국의 불교신앙 전개에 있어서 법화신앙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신앙요소는 불상의 조성에 석가모니불과 미륵보살(또는 미륵불)의 조성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미륵에 대한 신앙은 법화경의 신앙을 중심으로 유행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시 중국의 북쪽 지역은 전란의 시기였다. 짧은 기간 동안 왕조가 세워지고 망하기를 반복하던 5호 16국 시대였으니 혼란함 속에서도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정토로 구현하고자 과거와 현재 미래의 부처에게 예불하고자 한 것이다. 5호16국 시대의 혼란기에 화북지방을 통일한 北魏(386~534)는 법화신앙을 통해 과거불의 계승자로서 석가불의 역할, 석가불의 계승자로서 미륵의 역할에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死後조차도 이러한 미래에 석가불의 계승자로서 이 땅에 도래할 미륵불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북위인들의 사고가 투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법화경이 번역된 것은 276년 경 竺法護에 의한 『正法華經』번역에서 시작한다. 이전 시기에 비슷한 성격의 경전이 존재하지만 신앙적으로 완비된 형태의 번역은 중국인들이 불상을 만들거나 탑을 조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406년 구마라집이 『妙法蓮華經』을 번역하면서 이러한 신앙의 흐름은 한 층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도식적 구조는 법화경 상에서 등장하고 있는 多寶-釋迦-彌勒의 출현으로 중국 내에 있어서 중요한 신앙의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신앙적 요소를 바탕으로 중국내에 조성된 불교문화는 중국인들의 신앙관에 녹아든 법화 신앙적 요소를 보여준다. 북위의 석굴조영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운강석굴과 용문석굴에서 미륵보살의 구현은 前六佛-釋迦佛-彌勒佛로 과거-현재-미래의 법화신앙에 입각한 도상학적 특징이 구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미륵경계열의 신앙적 특징 보다는 법화경계열의 신앙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운강석굴의 2기석굴에서 상단의 미륵보살과 중단의 석가다보이불병좌상이 구현되는 점이나 용문석굴 고양동의 좌우불감에 있어서 상단은 석가불이 중단은 미륵교각보살상이 위치하는 점도 이러한 미륵이 석가의 계승자라고 하는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미륵에 대한 열정은 단순한 사후에 도솔왕생의 열망이 아닌 미륵신앙을 통해 현세에서 미륵불의 현신을 바라는 강한 의지도 함께 투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용문석굴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으며 석가와 미륵의 조성 뿐 아니라 조성에 따른 명문의 내용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직접화현한 마지막 부처인 석가와 미래세에 직접 올 미륵불을 통해 직접적인 이 세상의 정토를 갈구하는 솔직담백한 당시사람들의 신앙을 보면 그들의 불교에 대한 신앙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다른 곳에 있는 정토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하늘에 올라가기를 갈구하고 다가올 미륵불의 세상에 다시 돌아오고자 하는 믿음은 북위 사람들의 현실적이고 현세적인 신앙관이 함께 표출된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e Buddhism in China had been affected by the belief in the Lotus sutra in many ways. It is possible to find its marks on the statues of Sakyamuni and Maitreya. The Lotus sutra was the main idea of the belief in Maitreya. In the chaos of many wars during Sixteen Kingdoms by Five Clans of Barbarians, people had served the Buddhas of past, present and future praying for the Buddhist paradise. In Northern Wei Dynasty(386~534) who ruled over the northern China, the religious interest had focused on the succeeding Buddhas of former ones such as Sakyamuni and Maitreya. The earliest translation of the Lotus sutra by Zhufahu in AD 276 was the first official sutra about Lotus belief, though there had been other sutras having the part of its idea before. This sutra, perfectly supporting Lotus Buddhism, became the foundation of making statues and stupas. The Lotus sutra had been much influential since the Wonderful Truth of the Lotus Sutra(Saddharmapundarika) was translated by Kumarajiva in 406. The three Buddhas of past, present and future are indicated as Prabhutaratna-Sakyamuni-Maitreya in Lotus sutra. This distinctive idea had affected the Buddhism in China. The statues of Buddhas built in Yungang and Longmen caves shows the Buddhism in Northern Wei had been influenced by Lotus sutra. The way Buddhas’ statues arranged proves that they were built based on the Lotus sutra. The idea that Maitreya comes after Sakamuni was embodied in the way of placing Buddhas’ statues in caves. In evidence, the Maitreya statue is on the upper base, as the statue of Sakya-Prabhutaratna sitting together is placed on the middle base in the second excavated Yungang grotto. Also in Gaoyangdong of Longmen cave, in the shrines of both side, Sakyama statue is placed on the upper base and Maitreya statue crossing legs is placed on the middle base. The inscription for the caves also reveals that the arrangement of statues followed the order of Buddhas’ present. The belief in Maitreya was not only for reaching to the Tushita heaven after death but also for the present of Maitreya to save the world. People had searched for the paradise through serving both the last Buddha who had come in real world and the Buddha who will come in the future. It is possible to say that the religion during the Northern Wei period was realistic and mund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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