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경』에 나타난 무념(無念)의 의미에 관한 소고
A study on munyeom (無念) of Dangyeong (壇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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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경 (壇經) 』의 ‘무념 (無念) 으로 종지 (宗) 를 삼는다’는 구절은 잘 알려져 있다. 성철 (性徹, 1912~1993) 선사는 『단경』을 근거로 하여 ‘견성을 무념이라고도 한다. 견성과 성불의 근본은 무념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무념을 직간접 주제로 연구한 논문이나 서적이 적지 않은데 무념의 의미를 천착한 것은 찾기 어려웠다. 대개 불교의 언어가 중층적 의미를 갖고 있듯이 무념 또한 그렇다. 본고의 취지는 무념의 중층적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있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고 (本稿) 의 Ⅱ장에서는 『단경』에 나타난 무념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았는데 단경에서 순서대로 정의한 무념의 의미와 무념이면서 분별이 가능한 근거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또 무념이 능가선의 ‘심불기 (心不起) ’ 의 내용을 계승한 개념임을 밝혔다. Ⅲ장에서는 『단경』의 무념에 영향을 준 『유마경 (維摩經) 』을 통해 무념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유마경 (維摩經) 』의 「입불이법문품 (入不二法門品) 」의 무념과 관련된 한 문장을 범어 (梵語) 원문과 세 가지 번역본을 비교하여 정확한 개념을 찾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무념이란 생각함에 있어 생각하지 않는 것 (無念者, 於念而不念) 이라는 『단경』의 문장이 지겸 (支謙, 222~229) 과 구마라집 (鳩摩羅什, 343~413) 의 두 번역을 편집한 것임을 밝혔다. 또한 무념의 념 (念) 이 manasikāra이며 작의 (作意) 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작의와 무념 그리고 부동심 (不動心) 의 관계에 대해 고찰했다. 무작의 (無作意) 이며 부동심 (不動心) 인데 분별이 가능한 이유는 그 무념 속에 본래 보리반야지 (菩提般若 智) 가 있어 무념이 되면 스스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범부: 산란한 마음 (動心, 無明) → 작의→ (시비) 분별 •남방 수행법 (漸修) : 산란한 마음 (動心, 無明) → 작의→ 마음챙김 [念] , 알아차림 [正知] →집중 [samādhi, 三昧] → 지혜 [paññā, 慧] •대승 돈법 (頓法, 無生般若) : 부작의 (不動心) → 반야지→ 진여 자각→ 진여와 •계합→ 무념→ 반야삼매·일상삼매 (一相三昧) Ⅳ장에서는 『유마경』과 함께 『단경』의 무념에 깊은 영향을 준 『대승기신론 (大 乘起信論) 』에 나타난 무념의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기신론』은 무의식에서 작용하는 무명의 구조를 밝히고 어떻게 무명을 극복하여 무념을 깨닫게 되며, 무념을 깨달으면 왜 부처의 지위에 오르게 되는 가에 대해 깊은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무념에 대한 완벽한 이론적 근거는 『기신론』에서 제공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택 신회 (荷澤神會, 686~760) 의 어록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하여 제작한 『단경』의 무념의 의미는 1차적으로는 『유마경 (維摩經) 』의 「입불이 법문품 (入不二法門品) 」의 범본 (梵本) 에서 사용되었고 현장이 번역하고 신회가 언급한 것처럼 무작의 (無作意, manasikāra) 이며, 무작의가 가능하려면 부동심이 되어야 하고, 부동심이 가능하려면 모든 존재의 실상 (實相) 은 생긴 적이 없음 (無生) 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무념을 깨닫는다는 것은 본성인 진여 (眞如) 를 깨닫는 것이고 마음이 진여본성에 계합 (契合) 하면 그로써 부처의 지위에 도달하여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자재하게 되는 것이다.
Abstract
‘Making basic meaning by munyeom (free from thought, 無念) ’ of Dangyeong (Platform Sutra, 壇經) is a well-known passage. Seongcheol (性徹, 1912-1993) said ‘According to Dangyeong, gyeonseong (to see the nature, 見性) is equal to munyeom. Both of gyeonseong and becoming a buddha are rooted from munyeom.’ But there are only few studies about basic meaning of munyeom. Munyeom has several meanings like most of terms about Buddhism. I tried to understand about the meanings of munyeom through this study. Looking briefly, in second chapter I will examine how Dangyeong defines munyeom. And I found several meanings of munyeom and the reason why thinking can be nonthinking at the same time. And I revealed munyeom succeeded the state without mind arising (心不起) which is a main point of Neungga seon (愣伽禪) . In chapter 3, I studied the meaning of munyeom from Vimalakirti-nirdesasutra (維摩經) that affected Dangyeong. And I compared three versions of translations on the sentence about Advayadharmamukhapraveśaparivarto ṣṭamaḥ (入不二法門品) of Vimalakirti-nirdesa-sutra’ to find correct notion of munyeom. As a result, I found that an awkward sentence “munyeom is a status that thinking can be nonthinking” is wrong compilation with two translated sentences in versions of Zhi Qian (支謙, 222~229) ) and Kumārajīva (鳩 摩羅什, 343~413) Also, a thinking (念) is a manasikāra and jag-ui (mental orientation, 作意) . The reason why someone who is in a state of ‘unmoving mind (不動心) ’ can discriminate something is that there is a bodhi-prajna (菩提般若智) that is activated itself in munyeom. In summary, • Everyday life of ordinary person: moving mind (動心, mind with ignorance) → mental orientation (作意) → discrimination (分別) • Practicing theravāda meditation : moving mind (動心) → mental orientation ( 作意) → Sati, Sampajañña→ Samādhi→ paññā • Practicing mahāyāna sudden awakening meditation: unmoving mind (不動 心) → non mental orientation (不作意) → awakening thusness (眞如自覺) → being united with thusness (眞如契合) → without a though (無念) → Prajñā samādhi, One character samādhi (一相三昧) . In final chapter, I studied the meaning of munyeom from Mahāyānaśraddhotpāda-śāstra (Awakening of Mahayana Faith, 大乘起信論) that affected Dangyeong and Vimalakirti-nirdesa-sutra In Mahāyāna-śraddhotpādaśāstra, there are analysis about how to work ‘nescience’ and how to overcome the nescience to recognize munyeom. There is a perfect proof about munyeom in Awakening of Mahayana Faith. Finally, the first meaning of munyeom from Dangyeong that is quoted from Heze Shenhui (荷澤神會, 686~760) analects is mujag-ui (無作意) . Unmoving mind ( 不動心) makes mujag-ui (無作意) . The reason why ‘unmoving mind’ is possible is all of real aspects (實相) are not born (無生) , are without form (無相) and have no place to stay (無住) . Therefore, recognizing munyeom is awakening ‘thusness (眞如) ’. And thusness brings a practitioner to the state of buddha and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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