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균관 유생의 권당(捲堂)·공관(空館) 연구 : 개념과 기원, 절차와 군주의 대응, 현황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A Study on Keundang· & Kongkwan of Sungkyunkwan Yuseng in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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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조선왕조 성균관 유생들이 집단적으로 벌리는 시위양식인 권당·공재·공관에 초점을 맞추어 이 제도의 개념과 기원, 절차, 군주의 대응, 현황 및 문제점 등을 다각적으로 고찰해 보는데 있다. 조선초기 권당(捲堂)은 공관행위를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공관(空館)과 혼용하였으나, 조선중기인 인조 이후부터 권당은 ‘원점을 거부한다’는 뜻에서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시위행위’로 정의되었다. 반면, 공관은 ‘문묘에 사직하고 성균관을 비우는 시위행위’로 정의되었으며, 숙종조부터 등장한 공재(空齋)는 ‘거재유생(居齋儒生)들이 기숙사를 비우는 시위행위’로 정의되었다. 조선시대의 권당·공관에 대한 평가는 2가지 상반되는 견해가 있다. ‘왕권에 대한 가장 적극적이고 강력한 시위수단’이라는 견해와 ‘유교적 의리와 사문호위라는 명분아래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행하는 소극적이고 온건한 시위수단’이라는 견해이다. 조선시대의 권당·공관은 시기별로 성격이 서로 달라 분리해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조선전기의 경우 통치질서에 역행하는 왕실과 군주의 호불적 경향을 견제하기 위한 온건적 시위형태였다면, 조선 중기와 말기는 관학생들 각자가 속해있던 당의 무조건적 승리를 위해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왜곡되게 행해지는 시위수단이었다. 즉, 조선 전기의 권당·공관이 조정공론과 그 궤를 같이 하는 사림공론적 성격을 띠었다면, 중기·말기의 권당·공관은 조정공론 형성의 핵심관서인 언론 삼사와 승정원의 언론활동까지도 당론에 편승되어 있었던 까닭에 더 이상 공론이기를 포기한 사실상의 당파적 선전선동활동이었다.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발생하였던 권당·공관은 조신들과 언론 삼사의 비호 아래 성균관 유생들의 여러 가지 언로양식들 예컨대 통문과 관학소, 복궐 등과 철저하게 연동하면서 전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학생들의 권당·공관은 삼사 및 조신들의 언론활동과 비교해 볼 때 실질적인 효력을 거두지 못한 채 사림공론정치(士林公論政治)라는 명분만을 담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explore Keundang, Kongjae, and Kongkwan, a type of collective protest by Sungkyunkwan Yuseng in the Chosun Dynasty. The study focused on the concept, origin, procedure, King's countermeasure, state, and problem of the demonstrations. Since King Injo, Keundang had been defined to call students' protest by refusing to attend a class or declining to enter school meal house; Kongkwan by resigning Confucian shrine and vacating Sungkyunkwan, the Dynasty's royal university. Appearing in King Sookjong, Kongjae was defined as Girjae Yuseng's rally by vacating their residence hall. There exit two conflicting views on Keundang and Kongkwan. One is that they were the most powerful demonstration against King's authority; the other is that they were a passive resistance aligned with party politics. In the early years of the Chosun Dynasty, Keundang and Kongkwan were characterized Sarim's public opinion concerning the royal court's general interests. Since the middle years, however, the protests had functioned as political sect's propaganda and instigation. In conclusion, Keundang and Kongkwan by Yuseng could be viewed at most as gaining of the justification pursued by Sarim's public opinion, failing to obtain the essential efficacy usually exercised by speech institutions and power offic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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