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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 정국政局과 구언求言의 시행

Practice of Gu-un(求言) and Operation of political situations in Rein of King Youngjo(英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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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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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영조대 정국과 구언·응지상소를 연관 짓는 것을 시도한다. 구언하여 얻어진 직언을 수용하는 것은 군주의 덕목으로 이해되었으므로 구언은 조선시대 내내 시행되었다. 그러나 17세기 이래로 구언과 응지상소가 당쟁의 수단으로 활용되자 끊임없이 논란이 되었다. 영조는 탕평을 기치로 내걸고 정국을 운영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응지상소가 여전히 당쟁의 수단으로 기능하고, 자신의 정통성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에 활용되자 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였다. 영조대 후반에 이르면 구언이 국왕 주도로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구언은 필요에 따라, 정국의 사정과 궤를 함께하였다. 영조대의 경우 정치적으로 혼란할 때는 구언이 시행되지 않다가 필요에 따라 구언이 내려졌다. 영조는 구언을 운영함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소규모로 불시에 내리곤 하였으며, 구언하교에는 강력한 어조의 문구들을 포함시켰다. 영조는 구언을 주도함으로써 도덕 군주의 면모를 보이고자 하였으며, 신료들을 비판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영조는 구언을 주도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스스로는 도덕 군주적인 권위를 얻으면서도 국정의 주도권까지 장악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implementation of Gu-un(求言; enlist advice)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英祖) alongside the administration of state affairs. Accepting candid advice received through Gu-un was considered a virtue of the monarch, and this practice continued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However, since the 17th century, as remonstrances and petitions were increasingly used as means in factional strife, conflicts arising from this practice became persistent conflicts arose. King Yeongjo sought to govern the state under Tangp’yo^ng theory(蕩平; political balance). In this context, the practice of Wung Ji Sang So(應旨上疏; The advice) began to create turmoil and was used to challenge his legitimacy, leading to a need for change. For a period, Gu-un was not implemented, and criticism of this stop followed by critical remarks. In the latter part of King Yeongjo’s reign, Gu-un began to be implemented under the king’s initiative. These Gu-un was issued in accordance with the political atmosphere and the needs of the state. During times of political turmoil, Gu-un was not issued, but was practiced when deemed necessary. By implementing Gu-un, King Yeongjo demonstrated the virtues of a wise ruler while criticizing officials who did not respond to it. This approach was highly intentional, which was a highly deliberate 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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