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江戸]막부의 대외관계 형성과정
The Making of the International Relationship in the Early Moder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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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본 근세의 대외관계는 막번체제의 형성과정과 맞물리면서, 당시의 변화하는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형성ㆍ정착한다. 그리고 국가간의 명분보다는 현실적 실리를 중시하는 대외정책 기조가 유지된다. 그리하여 일본의 대외 ‘4개 창구’는 확정된다. 이러한 대외 창구는 명ㆍ청 교체기를 통해 확정된다. 이러한 대외 교섭 창구가 확정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청이 일본과 정식 외교관계를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가능했다. 한편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성립․확정된 외교․무역관계는 대내적으로 조선과 류큐는 일본에 입공하는 위치, 중국은 일본과 대등하게 통상하는 위치, 네덜란드는 ‘막부신료’로서 통상하는 위치라 선전된다. 이것은 쇼군 교체시 조선의 통신사 파견, 류큐의 사은사와 경하사 파견, 네덜란드의 쇼군 알현과 풍설서의 진상 등 퍼포먼스를 통해 재생산되었다. 한편 일본이 ‘일본형 화이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일본형 화이질서’를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그 결과 일본 근세기의 대외관계가 ‘일본적 화이질서’를 형성하였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일본형 화이질서’의 표현으로서의 류큐와의 관계, 에조치와의 관계는 사실상 일본의 영향권 확장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차별의 문제이다. 청의 책봉을 받고 있는 류큐가 사츠마와 상하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청이 展海令을 통해 일본과 통상을 활발히 전개하는 청의 대일본정책=현실 외교 태도에 의해 형성․지탱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네덜란드와의 관계=‘나가사키 창구’는 기본적으로 국가 사이의 외교관계라기보다는 무역관계로, 기본적으로 무역에 수반한 쇼군과 네덜란드 상관장과의 상하관계를 나타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기 후반 17세기 중반에 걸쳐 형성되는 동아시아 제국간의 관계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강조하는 상호관계로 전환되어,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명분적 국제관계=화이질서가 약화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조선도 그러하였고, 종주국=청마저도 그러하였다고 생각한다. 즉 청은 류큐가 사츠마에 복속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류큐에 책봉=조공을 인정하고, 책봉을 받지 않은 일본과 중국인의 무역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Abstract
日本近世における対外関係は幕藩体制の形成過程と噛み合いながら、変化する当時の東アジアの国際情勢に対応する過程で形成․定着する。そして国家の間の名分より実利を重視する対外政策の基調が維持される。その結果、いわゆる日本の「四つの口」が確定される。このような対外の口は明淸交替期を通して確定する。これは基本的に清が日本との定式な外交関係を主張しなかったから可能であった。 このような国際関係の中で成立․確定された外交․貿易関係は対内的に朝鮮と琉球は日本へ朝貢、中国は日本と対等、オランダは幕府の臣僚として通商する位置であると宣伝される。これは、将軍交替の時に朝鮮は通信使、琉球は謝恩使と慶賀使の派遣、オランダは将軍へのお目見えと風説書の進上等のパポマンスを通じて再生産される。 一方、日本が「日本型華夷意識」を持って「日本型華夷秩序」を構築しようと努力し、その結果、「日本型華夷秩序」が作られたという主張は納得しがたい。「日本型華夷秩序」の現れとしての琉球と蝦夷地との関係は日本の影響圏の拡大に伴う差別の問題である。清から冊封を受ける琉球が薩摩と上下関係の支配を受けるのは清の展海令に基づいた日本との通商を求めた清の対日本政策により支えられたとみられる。そしてオランダとの関係は国家間の外交関係というより、基本的には将軍とオランダ商館長との貿易関係․上下関係を表現していると見られる。 それにも拘らず、16世紀後半から17世紀中半にかけて作られる東アジア諸国の間の国際関係は名分よりは実利を重視する相互関係と転換され、中国を中心とする名分的な国際関係=華夷秩序は弱くなる。これは日本のみならず、朝鮮も同じである。また、清も同じである。すなわち、清は琉球が薩摩へ服属していることを知りながら、琉球に册封=朝貢を認め、册封を受けない日本と中国人との貿易関係を維持したのであ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