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代 西北邊境 吏卒의 日常
汉代西北边境吏卒的日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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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서 징집된 수졸들은 서북변경지역에 도착한 이후, 식량과 의복 등 변경 생활에 필요한 주요 물품을 지급받은 이후에 燧와 候官 등의 근무지에 배치되었다. 이들의 주요 직무는 흉노의 침입을 대비한 경계근무, 候望, 문서전달 및 다양한 잡역에 종사하였다. 또한 이와 같은 직무의 수행 중, 질병으로 인한 휴가 역시 변경생활의 일부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수졸들의 모든 일상들은 변경지역이라는 특성상, 문서에 의한 보고 체계 내에서 이루어진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변경에서의 군사조직은 군현조직과 긴밀한 관계하에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변경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가운데에 발생한 여러 가지 사안 역시 변경지역의 일상을 살피는데 매우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다. 즉 당시 변경이 군사적 최전선의 성격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吏卒의 생활 공간였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예를 들면 수졸간의 사적인 다툼 역시 어느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하나인 것이다. 즉 戍卒 東郡 畔縣 戍里 靳亀. 지난 4월 근무가 없는 날에 屋蘭縣의 경계에 까지 나갔다가 戍卒 函何陽과 언쟁이 발생하여 검으로써 오른손 손가락 두 곳을 다치게 하였다. ●地節三年(B.C.67) 8월 2일에 형구를 채워 체포하였다(戍卒東郡畔戍里靳亀 坐乃四月中不審日行道到屋蘭界中与戍卒函何陽争言以剣撃 傷右手指二所 八月己酉械繋) 「13.6」 戍卒 東郡 □里 函何陽. 검으로 싸워 같은 군현 출신의 수졸인 戍里에 거주하는 靳亀의 오른쪽 흉복부 한 곳을 다치게 했다. 地節三年(B.C.67) 8월 6일에 형구를 채워 체포하였다( 戍卒東郡□里函何陽 坐鬥以剣撃傷戍卒同郡県戍里靳亀右脾一所 地節三年八月辛卯械繋) 「118.18」 상기 인용한 「13.6」과 「118.18」간의 내용은 완전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는 簡의 내용이다. 두 간에 보이는 靳亀과 函何陽은 同鄕人으로 동일 지역으로 징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이다가 靳亀는 劍으로서 函何陽의 오른손 손가락 두 개를 상해했으며, 函何陽 역시 검으로 靳亀의 오른쪽 옆구리 한 곳을 찔러 각각 地節3년(기원전 67년) 8월 2일과 6일에 官에 붙잡힌 사건이다. 거연한간의 내용 가운데 하급관리 사이에 발생한 상해사건 역시 이들의 일상 가운데 하나였다면 리졸들의 商行爲 역시 그들의 본래 직무외에 또 다른 일상이었을 것이다. 즉 하급 관리들의 “私市”에 종사한 경우이다. “⍁爲家私市酒泉持牛車二兩案毋□□□(「403.12」)”의 “爲家私市”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의미는 자가의 이익을 위하여 종사하는 사인무역을 의미한다. 거연한간 가운데 “私市”는 민간과 현직의 吏卒이 종사하는 경우를 확인할 수 있는데, “⍁戌朔癸巳甲渠障候謹遣令史薛誼⍁ ⍁張宗爲家私市觻得唯府告⍁ (「270.20」)”의 기사는 현직의 하급리졸이 사시에 종사한 경우이다. 내용의 앞뒤 부분이 누락되어 있어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는 곤란하지만 아마도 갑거후관에서 영사를 파견하여 관련 수속을 진행하였던 것이며, 하급관리인 張宗은 “爲家私市”를 위하여 府(아마도 거연도위부)의 허락이 필요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吏卒의 商行爲는 금전을 둘러싼 문제 발생의 사안 가운데 A8 甲渠候官 유적 F22에서 출토된(EPF22:1-36) 유명한 「候粟君所責寇恩事」 (候인 粟君이 고용인 寇恩에게 빌려준 돈을 갚기를 요구한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秩 6百石에 해당하는 候인 粟君이 갑거후관에서 1천 여 里 떨어진 觻得縣에서 상행위를 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서북변경지역에서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외에도 거연한간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 리졸들의 일상은 참으로 다양하다. 詔書 및 각종 법령문서의 숙지, 會計의 기초가 되는 九九表(「75.29」), 曆法(「179.10」), 習字(「24.8A」, 「24.9B」)의 학습, 그리고 거연신간의 社祭관련 簡(「EPF22:158-160」)의 내용을 통해 변경의 군사조직내의 軍社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河西’라고 표현되는 서북변경사회의 특수성이란 종래에는 막연히 이민족과 경계를 접하여 전투를 전제로 형성된 지역, 그렇기 때문에 군사적 성격만을 강조한 지역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서사회는 무제이래로 변경사민과 군현의 설치에 의해서 신설된 지역이었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한제국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개발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한의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과 통제에 의해 유지된 사회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내군출신의 戍卒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징집되어 ‘邊防義務’의 수행이라는 제한적이고 특수성만을 강조한 변경의 일상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 일상이 문서를 통해 상급기관에 보고되는 제한적 성격의 변경지역의 일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內郡과 같은 일상 생활의 영위라는 또 다른 측면의 변경의 일상은 분명 한제국의 일부를 구성하였던 것이다.
Abstract
本篇论文以居延汉简及有关汉简中配属于燧和候官的吏卒的日常为主要叙述对象. 吏卒的出身主要是内地移民或是两汉交替期战乱被害移民. 如居延汉简中“戍卒颍川郡郏翟里成適年卅二 為部卒取私橐(32.7)”, “田卒昌邑国 湖陵始昌里士伍李□年廿四(501.1)”, 出身于内郡的移民到达河西地区后分配到日常空间里或为了完成国家所赋予劳动分配到军事设施或该当工作地点. 分配给燧和候官的吏卒从事的是国家所赋予的劳动, 因此没有酬劳, 国家只提供最基本的粮食、食盐、衣服等生活用品. 除了与燧执行警戒任务以外, 吏卒们还要执行“候望”即监视任务. 这不是简单的监视任务, 而是需要在不同的情况下发出不同信号, 而且中央政府的文书和各个边境地区报告的文书的传达也是他们要执行的任务. 从内地征集的吏卒们在陌生的边境地区生活不是一件容易的事情. 反复执行的任务、在与匈奴的紧张对峙中引发的疾病与死亡、以及根据不同职务的休假等都是边境地区吏卒的主要日常生活. 因为这些吏卒的日常生活都属于边境地区, 所以包括在文书报告体系内. 边境地区的军事组织与郡县组织维持着紧密的关系, 因此在边境执行任务过程中发生的各种事案对于考察边境地区的日常生活起到非常重要的作用. 即当时的边境不仅是军事最前线也是吏卒的生活空间. ‘河西’这一特殊的西北边境社会是为了戒备其他民族侵入为战斗而形成的地区, 因此具有强烈的军事性质. 河西社会是武帝以来通过边境四民和郡县设置新设的地区, 简单来讲就是由汉帝国人为开发的地区, 因此它是依靠汉帝国的统治维持的社会. 大部分内郡出身戍卒通过国家权力征集, 在边境过着执行‘边防义务’的有限且又特殊的日常生活. 他们通过文书报告给上级机关的有限的边境地区日常生活中一定含有与内郡相同的部分, 这种形式的边境生活也可以构成汉帝国的一部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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