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平洋戰爭期 滿洲國의 宣傳政策
Manchukuo propaganda policy during the Pacific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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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이 장기소모전의 수렁에 빠져 있는 가운데 일본은 동남아지역으로 다시 침략을 확대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의 만주국에 대한 인적, 물적 수탈이 증대되면서 전시경제통제도 한층 강화되었다. 이에 만주국에서는 盟邦 일본의 침략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대민선전에 돌입하였다. 총력전과 장기전이 예상되는 전쟁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저항을 막고 나아가 그들의 동의와 협력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이 임박해올 무렵, 만주국에서는 긴박한 시국 하에 선전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선전체제를 재편하고 강화시켰다. 우선 만주국 선전정책의 핵심 기구였던 홍보처를 개편 확대하는 것을 시작으로, 弘報三法을 공포하여 언론을 통제하고 장악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또한 법령에 근거하여 신문사의 통폐합이 진행되었다. 이로써 만주국 정부는 통신신문기관을 정부의 직접 통제 하에 두고 전시 보도전, 선전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물적 기반을 조성하였다. 특히 태평양전쟁기 홍보처는 선전기구이자 검열, 통제기구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 무렵 선전은 신문을 비롯한 미디어통제와 병행해서 추진되었다. 종래 선전기구였던 홍보처의 업무와 권한이 확대하면서 질적으로 변화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전은 그 영역이 확대되면서 통제의 측면이 강화되어 갔다. 일본의 동남아 침략이 시작되자,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을 지속시키기 위한 논리였던 ‘동아신질서의 건설’이라는 슬로건을 확장시켜 ‘대동아신질서의 건설’,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을 구호로 내걸었다. 태평양전쟁은 대동아전쟁으로 불렸고, 중일전쟁 못지 않은 聖戰으로 미화되었다. 일본과 日滿一體不可分의 관계에 있던 만주국은 盟邦 일본이 주도한 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 날조된 대동아공영권의 명분 아래, 만주국은 스스로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거점으로 북변 방위와 병참기지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따라서 만주국에서는 전쟁 수행에 소요되는 물자에 대한 증산과 아울러 통제가 한층 강화되었다. 곡물, 철, 석탄, 비철금속, 인조섬유 등에 대한 증산이 강요되고, 특히 만주국의 농촌은 대동아공영권의 식량공급지로서, 농산물의 증산, 노동력 공출 등의 국가적 요구가 집중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국가에 의한 강도 높은 노동통제와 노동력 징발이 강행되었다. 즉 ‘國民皆勞’,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勞務體制를 실행하여 노동력의 자급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특히 병역에 복무하지 않는 청년이나 학생들은 ‘勤勞奉公’의 명목 하에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 이렇듯, 태평양전쟁 시기 만주국은 일본의 병참기지 역할을 위한 전시통제경제체제 속에 놓이게 됨으로써 광범위한 인적 물적 자원의 통제와 동원이 강제되었다. 이러한 전시통제경제의 압박은 민중들의 불만을 야기하고 민심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나아가 전쟁 완수에 민중들을 동원하기 위한 선전공작이 총결집되었다. 이제 선전은 국책을 주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시통제경제의 압박에 시달리던 민중들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제공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이러한 선전방침의 변화는 영화, 라디오방송, 신문에도 반영되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 라디오방송, 신문의 제작이 요구되었다. 또한 만주국의 급박한 시국 하에서 선전정책의 입안자들이 주목한 것이 문학, 예술, 이른바 ‘藝文’이었다. 태평양전쟁이 임박해질 무렵, 만주국에서는 문화에 관한 통제가 극적으로 강화되었다. 1941년 3월 「藝文指導要綱」이 발표되었고, 요강에서는 만주국에서 육성하고자 하는 예문의 특질이 규정되었다. 그런데 요강에 의거하면 만주국에서는 만주국의 독자성을 지니는 예문을 육성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 일본의 식민지에서 강제된 일반적 문화정책이 독립국을 표방한 만주국에서는 쉽게 적용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만주국에서는 일본문화를 일방적으로 주입할 수 없었고, 일본문화와도 구별되고 중국의 것도 아닌 만주국만의 특징을 지닌 문화를 창출해내야 했다. 이것이 만주국 예문정책, 문화정책의 특징이자 딜레마였다. 한편, 만주국에서 육성하고자 하는 예문은 순수문학, 순수예술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그 성격과 의무가 규정되어진 예문이었다. 즉 내용면에서 미적 입장에서 건국정신을 담아내야 하는 것으로, 건국정신으로 집약되는 만주국 정부의 의도를 담아서 모든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또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야 했다. 예문가들에게는 이상과 같은 내용을 지니는 문학, 예술활동이 강제되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예문인들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태평양전쟁의 聖戰性을 민중들에게 알리고 필승의 신념을 조장하는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시국은 날로 긴박해지고, 이른바 ‘決戰體制’로 갈수록 대중에게 국책을 주입시키고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던 만큼 선전공작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Abstract
This essay is aimed at exploring the propaganda of Manchukuo(滿洲國) in the Pacific War and its features. Over the past few years, in the midst of the Sino-Japanese War, Japan had strived to invade and occupy the region of South-east Asia. It was inevitable, consequentially, that Manchukuo was deeply influenced by Japan's policies due to its own substantial status as one of Japan's colonies, even though it pretended to be an ostensible independent nation. Ahead of the impending Pacific War, Manchukuo already had done propaganda in favor of Japan. To be specific, it proceeded by setting up and expanding the Publicity department(弘報處) that was the core institution for propaganda, and promulgating three Publicity Acts(弘報三法) to find grounds to support legal sanction against the media. These could be easily used to the glorification of the Pacific War as the holy war for joint defence against the US and Britain in favor of Asians. Manchukuo, at that time, endeavoured to devote its own capacity to propaganda maneuver in order to keep its people calm and to exploit them for the war. Thus, propaganda played the role of not only promoting national policy, but also providing its subjects suffered from the wartime economy with enjoyment and comfort. Especially the policy planners readily concentrated upon literature and art(藝文). Many artists and men of letters were subject to be regulated by authority and their works were to be strictly censored. They were forced to propagate the justification of the Pacific War in favor of Japan to the general public and to arm them with a firm belief of victory. As the state of affairs in and out Manchukuo was sharply shaken, it could not help but focusing its full attention on efforts at these manoeuvres. This ended up opening up the way for creating the atmosphere that politics just became the way of propagandizing and all the administrative organizations becoming propaganda machin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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