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年代上海‘新女性談論’의 企劃 -『申報』와 『晨報』의 영화평과 독자평을 중심으로-
1930年代上海“新女性談論”的企劃 -以『申报』, 『晨报』的影评以及读者评为中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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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근대 중국에서 신여성은 그녀들이 살던 시대나 이후 그녀들에 대한 연구에서나 여성문제의 주요 쟁점 중의 하나였다. 또한 이러한 신여성의 현상은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그리고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그렇지만, 그 논쟁의 중점이나 논의 전개양상은 동일하면서도 다르게 나타났다. 바로 대도시에 나타난 구식 여성과는 분명 다른 외모를 가진, 혹은 의식을 가진 신여성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에 의해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들이 직접 생활하고 있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한편으론 그들의 의지와 표현, 여론의 향방 등에 따라서 신여성은 달리 보여지고 해석되어졌다. 특히 이들에 대한 시선은 다양하였으며, 어떻게든 이들을 규정짓고 자신들 사회에 맞게 포섭하고자,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신여성의 모습이 처음에는 ‘모던 걸’로 가십기사를 장식하다가 지향점으로서 ‘賢母良妻’가 부상하는 것은 어찌보면 다른 서구 개념들의 ‘體’, ‘用’식 중국적 수용맥락과 일맥 상통해 보인다. 그러나 신문화운동과 오사운동을 거치면서 새롭게 부상한 ‘여성’, 그리고 이후 ‘신여성’ 담론에는 ‘新賢母良妻’에서 요구하는 가정 안 여성이 아닌, 여성자신의 자립, 독립을 강조하는 의식들이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결혼, 자녀교육, 자립 등 당시 여성과 관련된 문제와 ‘사회(책임)’를 관련지어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상당부분 오사신문화운동의 수혜를 받은 사람들이 사회문제의식에 참여하고 있었고,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서구, 일본과 다른 유사한 상황-식민지이거나 반식민지-의 사회적 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보다 근본적인 여성문제에 접근하고 있었으며, 또한 영화계 종사자들이 여배우를 제외하고는 여성들의 참여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영화평론가나 독자평을 투고한 관객들 대다수가 남자였음을 감안하다면, 당시 상당한 한계점을 내포한 신여성 논의가 비단 여성 자신 이야기를 여성 스스로 제기하고 풀지 못한 채, 남성들에 의한 논의 혹은 남성적 패권주의라는 맥락에서 기인된 바라는, 그 측면만을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개인’의 소재 자체도 당시 중국적 상황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없는 처지에서 신여성, 여성문제도 사회적 맥락, 상황에 영향받는 바가 컸고, 담론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도 사회와 여성문제를 연결지어 풀어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성 또한 지나치게 사회적 상황에 신여성담론을 매몰시킴으로써, ‘新賢母良妻’ 논의와 마찬가지로 여성권익증진이나 여성해방과 같은 좀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또 다른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近代中國, 新女性在她們生活的時代以及之後對她們的研究上是女性問題主要爭議中的其一. 並且, 這種新女性現象不僅僅是中國的, 還是韓國、日本以及世界性的現象. 雖然如此, 論爭的重點及展開樣態存在統一的一面的同時又各有千秋, 即雖然是出現在大都市裏與舊式女性有著明顯不同的外貌、亦或不同意識的新女性, 但根據她們如何被自身生存的社會所接受、以及她們生活的社會的變化, 一方面根據她們的意志和表達、輿論的方向等, 新女性被賦予不同的視角以及注釋. 尤其是對她們的視線各種各樣, 論議總把她們規定與包納在符合自身社會的範圍內, 並以大都市爲中心活躍開展起來. 新女性的形象最初以“摩登女郎”來裝飾漫談欄, 後來以“賢母良妻”作爲落腳點. 從某種角度看, 這與西歐概念中“體”、“用”的中國式受用脈絡是一脈相通的. 但是與經曆了新文化運動和五四運動後新賦予的“女性”, 和以後“新女性”談論中“新賢母良妻”要求的家庭女性不同的是, 強調獨立的意識被更多提起. 這終究歸因於與結婚、子女教育、自立等當時與女性相關聯的問題及"社會(責任). 這與相當一部分從五四新文化運動中受益的人士參與社會問題意識、並且他們的積極參與依然有效有關. 從這點上與西歐、日本及其它具備類似狀況-殖民地或半殖民地-社會經驗的韓國不同, 中國更爲從根本上接近女性問題, 由此可見, 當時相當內含局限性的新女性論議不僅女性自身提出卻始終停留在無法解決的狀態, 只從男性的論議或起因於所謂的男性霸權主義的脈絡談起也比較困難. 反倒是“個人”的所在本身處於當時中國的狀況中, 在無法找到屬於自己的位置的處境下, 新女性、女性問題也從社會的脈絡狀況中受到很大的影響, 處於談論中心的人物們主張將女性問題與社會聯系在一起解決. 但是這樣的方向性及過於牽強地將新女性談論與社會聯系在一起, 可以說又導致了未能向更積極的方向-諸如“新賢母良妻”論議之類的女性權益增進以及女性解放邁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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