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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朝 后妃의 出家를 理解하는 몇 가지 視線

Some Perspectives to Understand the Pabbajja of the Empress during the Northern Dynas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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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北朝 后妃의 出家 현상을 설명하는데 일차적인 목표를 두었다. 이 시기 후비들의 출가는 北魏 孝文帝의 태화 연간을 기점으로 출현하였다. 당시는 漢化로 대변되는 유교 이념이 본격적으로 수용되었고 후궁제도의 운용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後漢 末 이래 중국에 유입된 佛敎가 황실의 후원을 받아 번성했고 여성의 가정과 사회에서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높았다. 모후의 정치 간여도 있었다. 결국 북조 후비의 출가는 개인의 종교적 선택이나 황제와의 관계 변화에 국한해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본 글은 북조 正史에 입전된 55명의 북조 후비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고 전체의 약 31%에 해당하는 17명의 출가 사실을 확인하였다. 우선 사서가 기록한 북조 후비들의 최후 행적을 보면 出家-自然死-不明-子貴母死의 순이다. 이 중 출가는 북위 효문제 태화 연간을 전후해 출현하는 데 북위 초 이래 시행된 자귀모사제도의 폐지와 관련이 있다. 모후의 정치 간여 및 정쟁 등과도 무관하지 않다. 북조 후비의 출가를 정치적인 역학 관계 속에서 설명하려는 이유다. 정쟁에 의한 후비의 출가는 자매간인 북위 孝文帝의 두 황후, 즉 廢皇后와 幽皇后의 출가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입궁과 황후 책봉, 그리고 출가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선무제의 생모이자 효문제의 또 다른 황후인 문소황태후의 폭붕과 맞물려 북위 조정 내부의 갈등 양상을 짐작케 한다. 이들에게 출가는 황제의 총애를 잃은 후비의 폐출 이면에 정적 제거를 위한 유효한 장치의 하나였다. 선무제의 황후인 고황후의 출가와 폭붕, 연이은 영태후의 득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서는 고황후의 출가를 황제 사망 후 이루어진 권력과의 절연 혹은 개인의 불교 신앙으로 설명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고황후와 그의 형 고조의 전권 행사에 대한 조정 내부의 반감이 크게 작용하였다. 자귀모사제도의 희생양을 자처했던 영태후의 입장에서는 이 제도의 시행 주체인 고황후에 대한 정치적 보복의 의미도 있었다. 궁중 내부의 정쟁과 관련한 후비의 출가는 북조 후기에도 계속되었으나 정쟁의 주체 중 한 명으로 기능했던 북위 후비들의 출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북제 宮闈에 만연했던 황제 및 황실의 문란한 행태로 인해 희생된 측면이 강하다. 이 경우 사서는 후비들의 출가를 개인의 奉佛 성향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한편 북주 후비들의 출가는 후비 출가의 하나의 정형성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예다. 황제의 사망이나 폐위 이후 出家→불교식 법명으로 改名→사망 후 尼禮로 장례를 치루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정형화된 듯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북주에서 두드러지는데 유교 이념의 수용과 무관하지 않다. 후비의 출가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불교과의 관련성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 시기는 후한 이래 유입된 불교의 확산이 지역적, 분파적으로 두드러지던 때다. 후비들은 가정이나 궁중에서 자연스럽게 불교 신앙을 접했을 것이다. 또한 불교 융성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출가 자체에 큰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을 수 있다. 상당수의 후비들은 출가 후 황제나 황후를 포함한 다양한 부류가 건립한 사원에서 수행하거나 본인의 집 혹은 잠정 궁정에 거처하면서 환관을 포함한 관원이나 가족의 조력을 받았다. 출가 후에도 세속 사회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한편 출가 후비들의 봉불 성향과는 별개로 佛事와 관련된 기록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출가 자체가 종교적 이유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지 않고 불교 계율의 제재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시기에만 보이는 比丘尼統이라는 승직에 주목할만하다. 출가 후비를 포함한 비구니들에 대한 관리를 담당하였고 출가한 女官이나 후비의 조력자인 비구니가 맡았던 직책으로 보인다. 출가 후비들은 교단의 계율보다는 황권의 지배 아래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적어도 신분상으로는 세속인에서 출가인으로 변했고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장례 절차의 변화로 이어졌을 것이다. 후비들의 출가가 하나의 정형화된 절차를 갖게 되는 북주 시기에는 이들의 장례 역시 尼禮로 진행되었다. 尼禮에 관해 비구니 자경의 묘지에 한정해보면, 비구니의 사망 후 황제의 애도-葬具 제공-中給事中의 喪事 감독-器物 하사-比丘尼統 追贈-北邙山에 葬事-墓誌銘 제작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출가 후비의 장례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사서가 기록한 출가 후비의 장례는 절차 및 喪期가 일반 후비의 그것보다 간소하였으며 葬地 역시 황태후의 일반적인 葬地인 金陵이 아닌 北邙이었다. 특히 자경의 묘지에 기록된 尼禮는 女官 묘지에 기록된 그것과 대동소이하였다. 북조 후비의 출가 현상에 대한 고찰은 출가 후비의 정체성 및 황제권의 운용, 그리고 남북조 불교의 성격에 대한 비교사의 측면에서 유용하다. 후비의 출가 현상은 북조-수당으로 이어지면서 變容의 과정을 거쳤고 후비의 집단 출가와 장례에 관한 부분에서는 특히 그렇다.

Abstract

This study was designed to explain the phenomenon of the queen becoming a monk from various perspectives. During the Northern Dynasties, Buddhism, which flowed into China since the late Han Dynasty, flourished under the auspices of the imperial family, and women's status in the family and society was relatively high. Starting from the period of Northern Wei Xiaowen's reign, the phenomenon of the queen becoming a monk is particularly prominent. During the same period, it is difficult to find cases in which the queen becomes a monk. Even in the event of the emperor's death or the fall of the dynasty, it is rare for a queen to become a monk. How should we understand this situation? During the period of Northern Wei Xiaowen's reign, remarkable changes occurred in the operation of the court lady system, and the queen's political involvement was active. In particular, the tendency of Buddhism to secularize was remarkable. The queen's becoming a monk is not limited to individual religious choices or changes in relations with the emperor, but is not irrelevant to political dynamics and changes in the status of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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