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북부 개항도시 鎭南浦의 中國領事館 조직과 그 位相
A Study on the Organization of the Chinese Consulate in Jinnampo, a Northern Port City of Korea, from the Late 19th to Early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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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필자는 청말부터 중화민국 시기 배화폭동 전후 진남포부영사관 조직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우선, 청말 증남포부영사관 조직을 주한공사관, 주한총영사관 조직의 전체상을 유념하면서 살펴보았다. 증남포를 포함하여 평안남북도, 황해도를 관할하는 증남포부영사관은 한중 간 근대 조약이 체결된 후 임명된 초대 주한공사 서수붕 시기에 만들어졌다. 일본이 한국에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주한공사관은 철수하고 주한총영사관으로 개편되었다. 마정량은 주일공사의 지휘를 받는 총영사였지만 주한 상민 보호 뿐 아니라 한중 간 교섭 안건을 처리하는 등 공사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졌다. 증남포 조직은 같은 부영사관급인 원산과 비교해서 더 중시되었다. 그 이유로는 증남포가 한중 범선 무역의 중추항이고, 조선의 전통 상업도시 평양 뿐 아니라 (1911년 신의주영사관 신설 전까지) 의주의 화상을 관할하고 있었으며, 운산 금광의 화공 수 천 명을 보호하는 의무를 져야 했기 때문이다. 화상의 규모 또한 증남포, 평양이 원산보다 훨씬 많았다. 다음으로, 중화민국 진남포부영사관 조직을 서술하였다. 청말과 다르게 중화민국 시기 진남포의 인사이동은 빈번하였다. 반면, 원산부영사 마영발, 수습영사 양우는 1909년부터 줄곧 원산에 재직하고 있었다. 이들은 능력 면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외교부가 1927년 경비의 부족을 이유로 진남포와 원산의 조직 개편을 발표하자 원산은 발 빠르게 대처하였지만, 진남포의 대응은 신속하지 못했다. 결국 원산부영사관은 유지되고 진남포는 판사처로 개조되었다. 원산이 유지될 수 있었던 연유는 마영발의 개인적 역량과 중화상회의 절대적 지지 때문이었다. 또한 청진영사관 개설 건과도 관련이 있다. 마지막으로, 배화폭동을 전후한 진남포판사처 조직을 검토하였다. 조직 개편 이전부터 총영사관에서 파견 근무를 하던 서원달은 1928년 초 총영사관원의 신분으로 진남포에 파견되어 관무를 처리하였다. 판사처 운영 경비의 주된 수입원은 범선조비 등 범선 관련 수입이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식염 전매령 시행 이후 진남포항으로 들어오는 범선이 격감하면서 적자가 누적되었다. 배화폭동 직전 서원달을 포함한 2명의 관원이 정상적으로 관무를 처리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서원달은 결국 평양 폭동의 책임을 지고 면직되었다. 20년 넘게 원산에서 근무한 베테랑 영사관원 양우가 총영사관 부영사로 자리를 이동하면서 진남포에 파견되어 선후 처리의 실질적 책임자 역할을 하였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in detail the organization of the Chinese Consulate in Jinnampo, a northern port city of Korea, from the late 19th to early 20th centuries. Firstly, I review the organization of it during the late Qing dynasty. It was established at the request of the first Chinese Minister to Korea appointed after the signing of the first modern treaty between Korea and China, Xu Shoupeng(徐壽朋). When Japan established a Resident-General in Korea, Chinese government withdrew its legation and dispatched Consul General Ma Tingliang(馬廷亮). was the Consul General who was under the command of the Minister to Japan, but due to the unique status of the Korean Empire, he held a position equivalent to that of a minister. The organization of Jinnampo was given more importance compared to the Wonsan. Secondly, I describe its organization during the early years of the Republic of China. Unlike during the late Qing Dynasty, personnel changes were frequent. On the other hand, there were hardly any personnel changes the Consulate in Wonsan. In the reorganization carried out in 1927 due to a shortage of budget, the Wonsan was maintained, but the Jinnampo was transformed into a office, due to the quick response of the personnel of the Wonsan. Finally, I examine the organization of it before and after the Anti-Chinese Riot. In early 1928, Xu Yuanda(徐源達), a officer to the Consulate General, was dispatched to Jinampo and handled official business. He difficulties due to a lack of personnel and shortage of budget necessary for the operation of the office. In the end, he took responsibility for the Pyongyang Incident and was dismissed from his position. Yang You(楊佑), who had worked at the Wonsan for more than 20 years, was dispatched to it as an assistant consul to the Consulate General, where he played a practical role as the person responsible for post-riot hand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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