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원 간섭기 고려왕의 대원정책과 복식정책의 관계연구

A Study on Relations between Koryo's Policy towards Yuan and Costume Policy under Yuan's Interference

0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의상

참고문헌 (75)

  1. "고려도경의 복식사적 연구" (1970)
  2. "고려복식에 미친 중국복식의 영향" (1974)
  3. "고려 백저 단수 포에 관한 사적 고찰" (1977)
  4. "해인사 금동비로자나불 복장복식과 고려후기 의복의 특성 성보학술총서1 성보문화재 연구원" (1977)
  5.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1978)
  6. "고려불화 속에 나타난 관모 및 계양에 관한 연구" (1983)
  7. "文殊寺 유물 포와 직물류에 관한연구" (1986)
  8. "고려시대의 직물연구" (1987)
  9. "고려 백의예찬문 연구" (1988)
  10. "고려불화에 나타난 고려복식의 고찰" (1987)
  11. "불화 속에 표현된 복식의 구조와 형태연구 -고려시대를 중심으로-" (1994)
  12. "한국몽고복식의 상관성연구 한국몽고복식의 상관성연구 -고려시대의 몽고침략기를 중심으로 고려왕조대 고려와 교류하였던 제국과 고려의 복식제도에 관한연구 금제를 병용한 100여 년간의 복식 -금과 교류 당시고려의 복식제도에 관한연구 고려시대와 송대의 관복비교연구-공상복을 중심으로 고려와 원복식의 비교연구 고려시대 원 간섭기 일반 복식의 변천 13-14세기 고려복식에 수용된 몽고복식에 관한연구", pp.4~1224 4 (1990)
  13. "己亥朔蒙古元帥哈眞及札刺 率兵一萬與東眞萬奴所遣完顔子淵兵二萬聲言 討丹賊攻和猛順德四城破之直指江東城"
  14. "고려시대 원 공주 출신왕비의 정치적 위치에 대하여 한국중세정치법제사연구 려원 왕실 통혼의 성립과 특징", pp.211 151~215 153 (1958), 韓國女性文化論叢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이화여자대학교 사학회 Vol
  15. "고려원 황실 통혼의 전개와 특징", pp.43~44 (2002)
  16. "元遣岳脫衍康守衡來王出迎于宣義門外詔曰爾國諸王氏娶同姓此何理也旣與 我爲一家自宜與之通婚不然豈爲一家之義哉"
  17. "고려 때 내명부의 작위"
  18. "고려의 대원관계와 북방정책 일본원정에 관하여 원에 요청한 7사중에 ‘小國軍官皆陽牌面’이라 하여 고려의 군관들에게도 萬戶牌千戶牌와 같은 몽고의 牌面을내려줄 것을 요구 하였는데 고려의 군사조직을 몽고와 같이 하겠다는 의도를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하겠다 이는 忠烈王이 원에 의존하는 자세를 심화하여 원에서 자신의 지위를 올리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조처였다", pp.36~44 (1993)
  19. "원 간섭기 유교지식인의 사상적 지형 14세기 유학자의현실인식과 성리학 수용과정의 연구 - 민지의 사례를 중심으로- 忠烈王 4년에는 원에 친조하여 원의 군대와 부원 배들을 철수시키고 6사 가운데 다루가치 설치 및 호구 조사를 철회하도록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고려왕조의 유지를 재확인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1960), 동국문화사
  20. "壬子世子 冠 以西原侯瑛之女 爲世子妃"
  21. "충숙왕대의 개혁안과 그 성격" (1997)
  22. "고려 忠宣王의 현실인식과 대원활동", pp.48~52 (1986)
  23. "충렬왕은 아들이 셋이니 제국대장공주가 충선왕을 낳았고 정신부주가 江陽公 滋를 낳았으며 시비반주가 소군서를 낳았다 江陽公 滋는 컸으나 공주의 소생이 아니라 세울 수 없었다"
  24. "고려와 조선전기의 기자인식 朝鮮 前期 社會 思想 硏究 箕子는 조선 세종 대에도 周 武王에대한 不服臣이라는 측면이 강조되면서 조선과 중국이 다른 세계라는 의식을 갖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러한 箕子에 대한 인식은 箕子문제에 대하여 국가 공식적인입장이 있었던 시기를 검토해 보면 중국과 고려의 차이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시기에 중시 되어 나타나고 있다", pp.248~255 (1983)
  25. "입성책동은 정동행성을 강화시켜 고려의 통치를 전담케 함으로써 고려의 국가적 독립성을 없애고 원의 지방행정단위로 삼자는 주장이었다"
  26. "忠肅王초기 通制派와 國俗派의 대립", 1516합 (2000)
  27. "高麗史 世家나 高麗史節要에는 모두 關西王으로 나타나있는데 元史에는 關西王이라는 王號는물론 集八 이라는 人名도 나타나지 않고 縝西武靖王은 思班으로 기록되어 있다 忠惠王 즉위년 당시 縝西武靖王은 思班이 분명한 만큼 集八은 곧 思班으로 지칭한 것으로 보여진다"
  28. "고려 충혜왕의 상업활동과 재정정책 역사와 현실 10", pp.236~242 (1993)
  29. "忠惠王은 마구간을 짓고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을 빼앗아 여기를 채웠다하는데 이 역시 시위부대 특히 기병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다고 생각된다"
  30. "高麗史 世家36 忠惠王 5年 史官의 評 史臣贊曰忠惠王以英銳之才"
  31. "고려 충혜왕과 원의갈등", pp.11~17 (1994)
  32. "내가 운명이 기박하여 이러한 우환을 당하였다 혈혈단신으로 산넘고 물건너 15000 리 길을 걸어 토번으로 향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에 대한 막대한 수치이다"
  33. "고려 공민왕의 즉위배경", pp.792~794 (1981)
  34. "혼인당시 공민왕은 20세였다"
  35. "원 복속기 선대왕들은 주로 황제나 至親의 딸을 후비로 맞이해서 왕위계승의 합법성을 인정받고 재위기간 중 왕권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어왔다"
  36. "공민왕은 즉위후 5개월만에 즉위교서를 頒布"
  37. "高麗史 卷39 恭愍王 元年 2月 乙亥日 원이 일본정벌을 중지한뒤 고려내정 간섭기구로 바뀌었는데 특히 죄인을 잡아 문초하는 역할을 전담 이기구를 없앰으로써 사법권을 되찾았다"
  38. "高麗와 元 明關係 高麗恭愍王代의 改革과 政治的 支配勢力", (56) (1990), 韓國史學會 55
  39. "정치가로서의공민왕- 재위전반기의 행적에 보이는 개혁군주로서의 면모 -", pp.283~284 (1998),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40. "고려왕실족내혼 연구", pp.158~159 (1988)
  41. "圍皇城甚急 以左常侍曹敏修"
  42. "出迎于崇仁門外 自有宋失馭"
  43. "恩非望及 當興師始自葛 及受貢會于塗"
  44. "고려 공민왕대의 반원적 개혁정치에 대한 일고찰-背景과 發端- 당시 남양 홍씨는 권문세족으로 유력한 존재였는데 공민왕이 원 공주의 모후가 아닌 고려인왕후를 모후를 둔 血緣意識이라는 면에서나 外戚勢力으로부터 정치적 지원을 받는다는 면에서 반원적 개혁정치를 펴는데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1989)
  45. "辛酉幸西北面迎公主順安公悰廣平公帶方公漢陽候平章事兪 千遇知樞密院事張鎰知奏事李汾禧·承宣崔文本朴恒上將軍朴成大知御史臺事李汾成從行王責汾禧等不開剃對日臣等非惡開剃唯俟衆例耳蒙古之俗剃頂至額方其形留髮其中謂之怯仇兒王入朝時已開剃而國人則未也故責之"
  46. "命李汾成還京令妃嬪及諸宮主宰樞夫人皆出迎公主留從臣于龍泉驛獨與開剃者大將軍朴球等行承宣朴恒言於王曰史官記人君動作不可一日無也乃令直史館李源從行"
  47. "丁丑王與公主至京入御竹坂宮先是兪千遇謂張鎰曰王若以戎服入城國人驚怪乃使崔文本朴恒請王以禮服入又使康允紹簡有之再請王不聽有之賤隸也以優得幸拜郞將宰相百官于國淸寺門前允紹宋汾嗾尹秀元卿鄭孫琦等執馳馬擊逐禮服者侍從失次分散王與公主 同輦入城父老相慶曰不圖百年鋒鏑之餘復見大平之期"
  48. "唯抄奴·所由·電吏 卿等自爲之"
  49. "忠烈王元年七月定朝官服章宰樞以上玉帶六品以上犀帶七品以下黑帶四年二月令境內皆服上國衣冠開剃蒙古俗剃頂至額方其形留髮其中謂之開剃時自宰相至下僚無不開剃唯禁內學館不剃左承旨朴恒呼執事官諭之於是學生皆剃"
  50. "以便服 受詔于康安殿 國王在日 屢言世子可以承替 凡在所屬"
  51. "丁巳宰樞議曰金侍中若還必卽開剃開剃一也先乎於是宋松禮·鄭子璵開剃而朝餘皆效之唯抄奴所由電吏皆仍舊初印公秀常勤元宗效元俗改形易服元宗曰吾未忍一朝遽變祖宗之家風我死之後卿等自爲之"
  52. "忠烈王二十七年五月服色擬於上國以芝黃代袍未幾復用黃袍"
  53. "因問康守衡曰高麗服色何如對曰服衣帽至迎詔賀節等時以高麗服將事帝曰人謂朕禁高麗服豈其然乎汝國之禮何遽廢哉"
  54. "甲寅王服紫袍設灌頂道場于康安殿詣景靈殿告嗣位遂乘輿至壽寧宮卽位受群臣朝賀班序尙右文西武東禮未畢天大雷電雨雹旣霽僉議司享王諸君宰臣軍官忽赤皆獻白馬"
  55. "淑昌院妃金氏尉衛尹致仕良鑑之女有姿色嘗嫁進士崔文早寡齊國公主薨忠宣爲世子疾幸姬無比專寵斬之欲慰解忠烈意以金氏納之後封淑昌院妃忠烈薨忠宣祭殯殿遂幸妃兄金文衍家與妃相對移時人始訝之後十餘日移御文衍家蒸焉未幾進封淑妃妃日夜百態妖媚王惑之不親聽政遂命停八關會元皇太后遣使賜妃姑姑姑姑蒙古婦人冠名時王有寵於皇太后故請之妃戴姑姑宴元使宰樞以下用幣賀妃"
  56. "順妃許氏…後元遣使 賜妃姑姑百僚宴妃弟用幣以賀…"
  57. "還自元 不同中國 伏望大丞相閣下 令業以相安"
  58. "일여 구영록 교수 정년퇴임 기념호 일여 구영록 교수 정년퇴임 기념논문정치사상과 이론 독립의 정치 -고려말 공민왕의 반원정책과 실지회복전쟁-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한국정치연구 Vol" (1999),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59. "道上胡迎謁 何以示人"
  60. "忠穆初裔與盧英瑞穿紫靴戴 帽踞胡床于宮門內見上洛君金永旽來不爲禮永旽"
  61. "고려 충혜왕의 상업활동과 재정정책 역사와 현실10", pp.232~242 (1993)
  62. "往江陵道 以其奸 由是"
  63. "停至正年號敎曰洪惟我太祖創業列聖相承咸能繼述衣冠禮樂煥然可觀比來國俗一變惟勢是求…"
  64. "司天少監于必興上書 始于白頭 終于智異 以黑爲父母 以靑爲身 以順土風 旣以土風所宜制定"
  65. "旣以土風所宜制定 命代言班主以上"
  66. "命代言班主以上"
  67. "國相之服紫文羅袍毬文金帶仍佩金魚侍中太尉司徒中書門下侍郞平章事參知政事僕射政堂文學尙書吏部事樞密使副同知院奏事等官通許服之 近侍之服紫文羅袍御仙金帶仍佩金魚自左右常侍御史大夫左右丞六尙書翰林學士丞旨學士以上及祗待國朝使命接伴館伴官服之 卿監之服緋文羅袍紅犀帶仍佩銀魚六寺卿貳省部丞郞國子儒官비書典職以上悉服之 朝官之服緋文羅袍黑角帶仍佩銀魚司業博士史館校書太司天兩省錄事以上悉服之其於階官亦限年數必待遷升而後易也館伴見中朝人使於館中中則各置二人服緋前導唯 不佩魚當是倣本朝朱衣雙引之制也 庶官之服綠衣木笏頭烏自進士入官省曹補吏州縣令尉主簿司宰等悉服之", 고려도경 선화봉사 7
  68. "率百官郊迎 嘗專使而往報 良由素習於文風"
  69. "還自京師 經由海濱 以奉宗廟 朕深以爲喜"
  70. "事元以來開剃髮襲胡服殆將百年及大明太祖高皇帝賜恭愍王冕服王妃·群臣亦皆有賜自是衣冠文物煥然復新彬彬乎古矣謹採國史作輿服志"
  71. "比中朝臣下九等 ······秩比中朝第六等·第七等 秩比中朝第八等·第九等"
  72. "한국복식사연구" (1975),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73. "同萬邦臣妾之心 熙洪號以創垂 望北辰"
  74. "고려시대 원 간섭기 일반 복식의 변천"" (2000)
  75. "13-14세기 고려복식에 수용된 몽고복식에 관한연구"" (2004), 한국몽골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3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