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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 김윤식의 국제 정세인식과 외교론

Acknowledging of International affairs and diplomatic theory of Unyang(雲養) Kim Yun Shik(金允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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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문명의 대전환이 전개된 역사상 초유의 격변기를 맞이하여, 당대의 유교적 관료이자 지식인으로서의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이 대내외적으로 당면한 시대적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결방안을 어떻게 모색하고 실천하려 했는가하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김윤식이 살았던 한말 일제초기는 조선에 대한 서구 열강의 각축이 본격화되는 한편, 그에 동반된 서구문명의 영향으로 전통적 유교문명에서 서구문명사회로의 변화가 태동되던 격변기였다. 정치가로서 김윤식의 삶 또한 격변의 시기만큼이나 파란만장 하였다. 88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내외의 요직을 역임하는 가운데 격변하는 국내외 정치 환경 속에서 당대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에 연루되었고, 19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의 정치적 행보 또한 친청(親淸)과 친일(親日), 일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극단을 오가며 끊임없이 변신을 행하였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까지 그에 대한 평가가 극단으로 갈리는 양상을 초래하고 있다. 김윤식이 외교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개항기 조선왕조는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 특히 조선을 둘러싼 청과 일본, 러시아의 각축은 당장이라도 조선왕조의 존속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당시 조선이 직면한 이러한 국제적 현실과 이에 대응하여 생존을 모색해야만 하는 조선의 열악한 내적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즉각적인 군사력 육성을 통한 자강(自强)의 필요성을 절감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김윤식이 파악하기에 즉각적인 자강은 불가능한 현실로, 어디까지나 조선왕조의 전면적인 개혁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는 장기적인 과제였으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조선왕조의 현실상황을 개혁하여 자강을 완수할 때까지 외세의 침략을 제어하기 위한 즉각적인 방안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김윤식이 선택한 당장 실현 가능한 방안은 외교 전략을 통한 자주권의 수호였다. 김윤식이 선택한 외교 전략은 서구 제국들과 통상조약을 체결하여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면하는 한편, 전통적인 사대외교에 입각한 중국과의 속방 체제(屬邦體制)를 유지, 강화하는 가운데 그 속에서 내치(內治)와 외교(外交)에서 자주권을 확보하는 방안이었다. 김윤식이 파악한 국제적 현실속의 조선은, 섣불리 대외적으로 자주국임을 주장하다가는 자칫 다른 나라의 속국(屬國)이 될 위험성을 안고 있는 약소국이었다. 자강(自强)을 통해 자주(自主)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자주국임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오히려 자주권을 상실하고 망국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1895년 이전까지 김윤식이 채택한 중국에 대한 속방 외교 전략, 즉 친청 노선(親淸路線)은 어디까지나 약소국인 조선이 자강(自强)을 할 때까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안전장치인 것이다. 청일 전쟁(淸日戰爭) 이후 갑오정권과 러일 전쟁과정에서 보인 김윤식의 친일적(親日的)인 태도 또한 중국을 대신하여 동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른 일본을 조선의 자주(自主)를 위한 새로운 보호막으로 설정한 외교 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김윤식은 특히 1900년 의화단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보인 일본의 활약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 소식을 접하면서, 일본이 중국을 대신하여 서구세력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의 자주권을 지켜줄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러일 전쟁 후 곧바로 진행된 을사조약(乙巳條約)은 그의 일본에 대한 이러한 기대감을 산산조각 내 버리고 말았다. ‘삼천리강토가 남의 것이 되고 황실이 있어도 허명인’ 보호국(保護國)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강대국을 보호막으로 삼아 자주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자강을 추진하려던 그의 외교정책은 이제 설 곳이 없게 된 것이다.

Abstract

In this thesis, awaiting a historical upheaval era of a great turn in the civilization, it is to look into how Unyang(雲養) Kim Yun Shik(金允植)(1835~1922), the confucionista bureaucrat and intellectual, searched and acted on the issues and solutions for the pending initiatives of such era. The Chosun dynasty of the opening port era when Kim Yun Shik started to enter the diplomatic stage was in a situation where the aggression of foreign imperialism especially the fight between Chung, Japan and Russia would imperil the existence of Chosun dynasty itself. He precisely knew the grim internal reality of Chosun that needed to react and survive such international reality that Chosun faced and realized that strenuous efforts through enhancing a sudden military force were needed. However, Kim Yun Shik realized that a sudden strenuous effort was impossible and was a long-term initiative that could be possible through a widespread innovation of the Chosun dynasty and it was not easy. Therefore, a sudden plan to control the foreign aggression were needed till the Chosun dynasty could reform the current status and have strenuous efforts of their own. The plan that Kim Yun Shik chose that could be implemented right away was to protect the autonomy through diplomatic strategies. The diplomatic strategy that Kim Yun Shik chose was to align with foreign powers in terms of commercial treaty and avoid the isolation from the international society and maintain and strengthen the client country system with Chin based on the traditional worship diplomacy while securing the autonomy from the domestic politics and diplomacy. Kim Yun Shik realized that within the international arena, Chosun was a small and weak country that has a risk of becoming a subject country of another country if it would claim to become a autonomous country. When you claim to become a autonomous country at a state where autonomy cannot be guaranteed through having strenuous efforts, you could lose your autonomy and become a country forgotten. The client country diplomacy strategy, that is the pro-Chung line toward China that was opted by Kim Yun Shil till 1895 was a safety device to protect themselves from foreign aggression till the weak Chosun has its strenuous efforts by themselves. The pro-Japan attitude of Kim Yun Shik after the Chung-Japan war and Gabojunguan and Russia-Japan war was also a part of a diplomatic strategy that was set as a new protection shield for the autonomy of Chosun upon Japan that became the new leader in East Asia replacing China. Witnessing the effort of Japan and its reaction to Russia during the process of su pressing the Euihwadan event in 1900, Kim Yun Shik was sure that Japan would be the new force replacing China that can protect the autonomy of Chosun from the aggressions of foreign forces. However, the Ulsa treaty that was signed right after the Russia Japan war smashed his expectations of him toward Japan. At a state where it became a protected country that ‘the whole nation became someone else' property and a king with no power’, his diplomatic policy which was to maintain the status of a autonomous country by having a strong country as its protecting shield and enhancing its own strenuous efforts became use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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