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유교지식인 김윤식의 서양 인식과 인민 이해
Western Perception and People's Understanding of Kim Yun-sik, a Confucian Scholar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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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근대기 지식인들의 서양 근대의 수용은 1960년대이래 근대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주제 중 하나다. 특히 한말 관료 유교지식인층의 대표적인 사례로 김윤식(1835~1922)의 사상과 활동이 주목된다. 그에 대한 연구는 유교적 지식 지형 변화에 주목하여 유교주의에 입각한 유교 문명론과 국가 제도의 시무(時務) 개혁, 그리고 서양 사상의 이해와 수용 정도 등에 관해서 진행되었다. 본고에서는 김윤식이 이해한 서양 정체 사상의 수준과 함께 서양에의 대응방식을 살펴보려고 한다. 또한 사상의 기저로서 밑으로부터 민중의 이해 여부도 살펴보려고 한다.1880년대 후반부터 김윤식은 시무 관료들이거나 개화 지식인과의 차이가 있었다. 우선 1880년대 초반 서양 각국과의 외교 관계를 설정할 때, 김윤식 저술의 『속음청사』에 나타난 <조미수호통상조약> 기록 내용을 분석하였다. 그의 대외인식은 중국의 속방 외교에 영향을 받는 소국으로서 위치지우고 있었고, 민중에 대한 용어는 인민보다는 민인으로 서술하였다. 『만국정표』에서는 각국의 정체를 비교하고 속지의 확대를 비판하면서도 청의 간섭배제나 조약개정을 주장하지 않고 개항통상의 준수를 주장하였다. 육용정의 『의전기술』 비평에서도 서양의 정체 중 군민공치에 동의하면서도 실무관료의 등용과 재상의 지위 보장으로 군주제가 보강되어야 한다는 소극적인 주장에 그쳤다.그는 민중들을 우민으로 보고 교화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특히 1893년이후 동학당의 등장을 유교주의에 가장 적대적인 대상으로 보았으므로 1894년 농민전쟁때 일본군의 농민군 토벌에 찬성하여 협조하였다. 그에게는 동학당은 난민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며, 그 근저에는 일반 민인이라는 사민(斯民)의식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는 1919년 3·1운동을 거치면서 약간의 변화가 모색되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인 민중인식의 변화는 없었다고 보았다.
Abstract
The acceptance of Western modernity by intellectuals in the late 1960s has been one of the most important research topics in modern studies since the 1960s. In particular, Kim Yun-sik (1835-1922)'s thoughts and activities are a representative example of Confucian intellectuals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The study was conducted on Confucianism-based civilization, the reform of the state system, the understanding and acceptance of Western ideas, and other aspects of Confucianism based on Confucianism. In this high school, we will look at the level of Western identity thought understood by Kim Yun-sik and how to respond to the West. We also want to look at the public's understanding from the bottom as the basis of thought.Since the late 1880s, Kim Yun-sik has been different from government officials or civilization intellectuals. First of all, when establishing diplomatic relations with Western countries in the early 1880s, the contents of the <Jo Mi-soo Trade Treaty> documented in Kim Yun-sik's <Bokum Government Complex>. His perception of foreign affairs was erasing his position as a small country influenced by China's secular diplomacy, and the term for the people was described as a civilian rather than a people. In "The Universal Statement of Government Administration", he compared the identity of each country and criticized the expansion of the stenographic area, but insisted on compliance with the open port trade without insisting on the exclusion of interference or revision of treaties by the treaty. In the criticism of Yook Yong-jung's "Civilization Technology," he agreed to the military rule among Western stagnation, but stopped short of insisting that the monarchy should be strengthened by the appointment of working-level officials and guaranteeing financial status. He regarded the people as people and regarded them as subjects of enlightenment. In particular, Donghakdang was considered the most hostile target to Confucianism since 1893, so it cooperated with the Japanese army in favor of the Japanese peasant army during the peasant war in 1894. He had a perception that Donghakdang was a refugee, and at the root of it was emphasizing the sense of people as ordinary citizens. He saw that while some changes were sought during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there was no basic change in popular consc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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