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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사행의 饗宴과 舞樂 -아라이 하쿠세키와 요시무네를 중심으로-

Reception Banquets for Shinmyo Diplomatic Envoy With a focus on Hakuseki and Yoshim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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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신묘년 통신사를 위한 향연접대에 舞樂이 연주된 점에 주목해, 舞樂이 갖는 의미를 고찰하고, 신묘통신사에 대한 빙례개혁을 시도한 아라이 하쿠세키의 의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요시무네가 雅樂을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관해서 검토한 것이다. 신묘사행의 가장 이례적인 점은 국서에 사용하는 칭호가 ‘日本國大君’에서 ‘日本國王’으로 변경된 점과 통신사 접대가 쇼군(將軍) 주최로 에도성에서 행해지고 궁중음악인 아악이 연주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德川實紀』에는 신묘년 조선통신사 접대를 위해 삼방악인(三方樂人)이 에도에 와, 모미지야마(紅葉山)악인과 함께 무악연주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三方樂所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조정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궁중아악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6대 쇼군 이에노부(家宣)시대에는 왕조문화가 침투해 에도성이 교토화 경향을 띄게 된다. 아라이 하쿠세키의 개혁은 천황계의 유서 깊은 문화를 이용해 에도성에 사는 최고권력자인 쇼군을 제왕화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을 국내외에 발신하기 위해 조선통신사에게 전달하는 국서에 ‘日本國王’으로 칭호를 변경하고, 통신사를 위한 접대를 에도성에서 조정의 권위를 상징하는 ‘舞樂’ 즉 아악을 연주하게 한 것이다. 아라이 하쿠세키의 빙례개혁은 이에노부 사후 쇼군에 취임한 요시무네(吉宗)가 그것을 부정함으로써 쇼토쿠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진다. 신묘사행 접대에 공연된 무악은 조선통신사측에서는 이전의 노가쿠(能樂)보다 높이 평가되지만 이후 한번도 통신사 향연에 공연되지 않았다. 요시무네 이전에는 무악, 특히 아악의 정통을 잇는 교토 요쓰쓰지가(四辻家)의 관리하에 있던 三方樂人을 불러들여 천황계의 깊은 유서를 가지고 있는 舞樂의 힘을 빌려 쇼군의 권위를 고시하려고 했다. 한편 요시무네는 역대 쇼군의 法會에舞樂을 공연하게 했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三方樂所에 의지하지 않고 막부지배하에 있던 모미지야마악인과 닛코악인들에게 주악을 행하게 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에야스(家康)의 130회기만큼은 다른 쇼군의 법회를 축소했던 것과는 달리 三方樂人, 모미지야마악인, 닛코악인을 총동원해 성대히 치룸으로써 도쇼다이곤겐(東照大權現)으로 신격화된 이에야스의 권위를 전면에 내세워 쇼군의 武威를 나타내려고 했다.

Abstract

After Ienobu’s death, however, this Bing-rye-gae-hyeok (聘禮改革), the reform of reception banquets for diplomatic envoys from Joseon, was overruled by Yoshimune and the ceremonial style was reverted back to that of the previous Tenna (天和). Despite the fact that the Joseon envoy appreciated Bugaku more than Nohgaku (能楽), which was played before this reform, Bugakuwas never performed after that time. Before the reign of Yoshimune, the Emperor’s authority was displayed with the performance of prestigious Bugaku. The Musicians of Three Areas under the control of the Yotsutsuji family of Kyoto, legitimate successors of Kyutei Gagaku (traditional court music), were sent to Edo to perform Bugaku. Yoshimune, on the other hand, though he used Bugaku for Buddhist memorial services for the shoguns of Tokugawa, never relied on the influence of the Musicians of Three Areas. It was the Momijiyama and Nikko musicians under control of the Tokugawa Shogunate that did the performance. Nevertheless, the memorial service for the 130th anniversary of Iyeyasu’s death was an exception. The Musicians of Three Areas and the Momijiyama and Nikko musicians all performed together in grand style to exhibit the absolute dignity of Ieyasu deified as “Tosho Daigo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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