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일본 사신의 춤 향유
The Dance Appreciation of the Japanese Envoys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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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의 목적은 춤의 국제 교류라는 측면에서, 일본 사신이 조선에서 향유한 춤의 양상을 밝히려는것이다. 조선과 일본의 국제 관계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달라졌으며, 그에 따라 춤의 무대가 되었던연향 공간도 달라졌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일본 사신 일행이 도착해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과 서울에서 연향이 베풀어졌다. 반면에 임진왜란 이후에는 동래에서만 사신 일행이 머무를 수 있었으므로, 연향역시 동래에서만 베풀어졌다. 일본 사신연은 지역 교방의 예술적 기량을 높이는 기폭제 역할을 했을것이다. 일본 사신연에서 여악과 무동 중, 누가 공연을 담당할 것인가는 지속적인 논쟁거리였다. 일본 사신을위한 잔치에서 주로 여악이 춤을 추었으며, 세종․세조․선조․중종․광해군․숙종 대에 부분적으로무동이 춤을 추었다. 성종대에 일본 사신연에서 기녀는 12인부터 24인까지 편성되었으며, 연산군대는300명의 기녀가 구성되어 일본 사신을 위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일본 사신이 향유한 춤종목은 전하지 않아서, 사신연이 아닌 다른 의례 기록에서만 전한다. 일본 사신은 세종대 회례연에서 <문무>․<무무>․<몽금척지기>․<오양선지기>․<동동지기>․<무고지기>를보았다. 단종대에는 <봉래의>, 세조대 회례연에는 <정대업지무>와 <보태평지무>를 감상했고, 성종대에는 <초무 금척무>를 비롯해 임금이 지정한 정재를 보았다. 회례연에 일본 사신이 참여했고, 일본 사신을 위해 별도로 창작된 정재가 없었으며, 일본 사신을 배려한 춤에 관한 언급도 없고, 임금이 권유하여일본 사신이 춤추기도 했다는 점에서 중국 사신과 일본 사신의 접대와 춤 향유에는 큰 차이가 나타났다. 사대의 관계인 중국과, 교린의 관계인 일본과의 국제적 관계 차이는 사신의 춤 향유에서도 반영되었다. 특히, 19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동래부사접왜사도≫에는 일본 사신 일행과 조선 관원을 관객으로 하여 춤추는 장면이 유일하게 등장한다. 동기와 기녀가 추었던 춤 공간은 사신연에서 이루어진 조선시대 춤의 국제 교류 현장이었다.
Abstract
This study starts from the question of what kind of dance had been appreciated by Japanese envoys. The scope of time period for this research is the Joseon Dynasty. The research objective is Joseon-wangjo-sillok (朝鮮王朝實錄), Akhakgwebeom (樂學軌範), all of source materials from official record and many literary works. First, Japanese envoys were enjoying the dance on the way to Seoul. In the Gyeongsangdo, Chungcheongdo, Gyeonggido, the banquets were held for Japanese envoys. Particularly, most performances took place in Gyeongsangdo. Thus the hosting for the Japanese envoys has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dance culture Gyeongsang region. Unfortunately the dance repertories are not known . After Imjin War, the feast and dance performances for Japanese envoys have existed only in Dongrae. Dancing performances performed in Japan House in Dongrae is seen in Dongrae-busa-jeobwae-sado (東萊府使接倭使圖). Secondly, the dances which were enjoyed by Japanese envoys in the court are Munmu, Mumu, Mongkeumcheok, Oyangseon, Dongdong, Mugo, Jeongdaeeop, Botaepyeong, and Bonglaeui. And those are called as court dance, jeongjae(呈才). Depending on the time, gisaeng and boy dancer were dancing performances for the Japanese envoy. The dance was not created for the Japanese envoys. In this regard, it can be seen that significantly less than the Chinese envoys. Third, Japanese envoy was also dancing in the royal feast. As the nationalities of audience and performers were different, the dances performed for Japanese envoys in Joseon Dynasty were kinds of international ex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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