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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학승들의 불전 탐구와 자국어 방언 활용

Studying Buddhist scriptures by Silla scholars and using their native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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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우리말을 한자로 기록한 차자표기가 처음 사용된 시기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인명과 지명 등에서 차자표기 원리가 먼저 사용되어 이두 성립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이후 우리말 어순에 맞추어 재배열한 변형 한문이 사용되었다. 제작 시기를 6세기 중반(552년)으로 추정하는 「임신서기석」이 그 사례이다. 이 변형 한문에 이두 성분이 결합하여 점차 정교한 이두문 형식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그 초기 형태는 6세기 이후에 나타나고, 8세기 중반에 문장 형식을 갖춘 이두문이 나타난다. 「大方廣佛華嚴經寫經造成記」(755)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초기 이두 연구는 금석 조각에 기록된 어휘를 추출하여 문자 언어학적으로 형태를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거로 삼는 사례가 충분하지 못한 데다, 그 판독이 불명확하고 기년도 불확실한 것이 많아서 진척이 더디고, 뚜렷한 성과도 제출하기 어려웠다. 이에 시선을 바꾸어 해당 시기 학술 환경에 주목해보았다. 국내외에 전하는 문헌 자료를 통해 이두 사용 주체인 신라 승려들의 학술 활동을 고찰하여 이두가 발생하게 된 계기적 사건을 탐색하였다. 이를 토대로 이두가 발생하고 발전한 시기와 그 계기적 성격을 추론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Abstract

It is difficult to know when the first use of 借字表記, which records Korean words in 漢字. Perhaps, the principle of 借字表記 was used first to mark people's names and place names, and it became the basis for the creation of 吏讀. Since then, 變形漢文, rearranged according to the Korean word order, has been used. The 壬申誓記石, which is estimated to have been produced in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552), is a case in point. It is believed that this 變形漢文 component was combined with this 吏讀 to gradually create a sophisticated 吏讀文 form. Its early form appears in records after the mid-6th century, and advanced 吏讀文 with a sentence format appears in the mid-8th century. 大方廣佛華嚴经寫经造成記(755) is that. So far, early research on 吏讀 has been to extract vocabulary recorded on stone carvings and analyze them textually and linguistically to draw conclusions. However, progress was slow and it was difficult to submit clear results because there were not enough cases that could be used as evidence and the timing was often uncertain. Therefore, in this article, I changed my perspective and paid attention to the academic environment at that time. By utilizing literature data transmitted at home and abroad, this study examined the academic activities of 新羅 僧侶, who used 吏讀. And through this, explored the background of the creation of 吏讀. Based on this, it is expected that it will be possible to rationally infer the time when the 吏讀 occurred and developed and the occa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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