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대 僧役給牒의 시작과 그 의미
The Circumstance and Significance of Issuing Monk Certificates Thanks to Requisitioning Monk Labor(僧役給牒) in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4th King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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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세종 연간의 공식적인 불교정책 기조는 度牒을 취득한 公度僧을 중심으로국가가 직접 공인교단을 관리 통제하는 것을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동왕 11 년 교단 측의 요구로 흥천사 수리공사에 처음 僧役給牒을 시행한 이후, 국가권력은 그 효율성과 편의에 취하여 스스로 제도적 원칙을 무너뜨리고 승역급첩이라는 변용적 도첩발급을 태평관 및 기타 영선공사에 재차 이용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30일 僧役에 도첩발급’과 같은 또 다른 법식이 가해지며 차츰상규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이는 경향성에 그칠 뿐 항구적으로 고정되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도첩은 공인승단 외곽으로 유출 가능성이 높아졌고, 동시에 교단권력의 세력 축 일부가 공인교단의 범위를 벗어나 외곽 즉 민간의중소사찰 쪽으로 흘러들어가는 형세가 형성되었다. 이는 세종11년 당시만 해도 도첩의 발급을 선제적으로 국가권력에 요청할 정도로 단단한 입지를 지녔던 공인교단의 지위가 차츰 불안정해짐을 의미하며, 이 과정을 통해 세종6년의 교단정비 때 공인되지 못하고 사멸의 위기에 봉착했던 민간의 중소사찰이존속의 기회를 얻어, 역설적으로 민간의 무도첩승 증가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The national policy regarding Buddhism in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4th king of Joseon) was to have direct control over the official Buddhist Order by managing monks which were officially approved to receive a Buddhist monk certificate(度牒) by the government authorities(公度僧). However, in the 11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jong (1429), the government for the first time issued these certificates to monks working to repair Heungcheonsa Temple, and then later to monks working to repair other government offices. The government did this for efficiency and economic advantage. Furthermore, the government made it a rule that labor of this sort for a period of at least 30 days was needed to receive this certificate. It was not a permanent policy. Ultimately, these monk certificates flowed out of the official Buddhist Order which was made of monks officially approved by national power. At the same time, the monks in small, unofficial temples in the countryside gained the certificates and, ironically, unofficial monks not approved by national power(私度僧) would have increa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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