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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운의 보편사관과 조선학- 문화사적 맥락의 역설을 중심으로

Baek Nam Hun's Universal Conception of History and ChosunHak-focused on paradox in Cultural History Con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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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본을 통한 근대 수용이라는 문화사적 맥락에서 백남운의 보편사관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일본을 경유한 서구사상은 이미 상당부분 ‘일본화된 것’일 수 있으며, ‘일본화된 근대’는 ‘일본판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조선은 근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1920년대 개조론자들처럼 ‘일본화된 근대’나 서구의 근대 자체에 매몰되어 ‘조선의 정체성론’이라는 식민주의 이데올로기까지 암묵적으로 수용하거나, 1930년대 조선학 운동처럼 ‘조선의 정체성론’에 대한 반발이 지나쳐 조선사의 고유성을 과대평가하는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양자 모두 조선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면서도, 구체적인 조선 인식이 부재하거나 불충분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렇다면 조선이 근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조선학의 가능성은 ‘일본화된 근대’나 서구의 근대 자체에 대해 어느 정도의 ‘거리’를 확보하면서 민족주의 과잉까지 피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백남운은 1930년대 조선학 운동처럼 ‘조선의 정체성’이라는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했으면서도, 맑스주의적 보편사관에 기대어 ‘민족주의의 과잉’을 피하면서 이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보편사관에 힘입어 식민지 이데올로기 비판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완수했지만, 조선과 일본의 차이를 무화시켜 조선의 특수성을 간과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조선학의 가능성에 좀더 가까이 다가섰지만, 다시금 보편사관을 강조함으로써 스스로 확보한 조선학의 가능성을 축소시켰다. 이렇게 볼 때, 그의 과학적인 조선인식은 ‘과학’을 확보했을지 몰라도 충분한 조선인식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이는 곧 백남운 역시 조선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조선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거나 불충분한 역설을 안고 있음을 시사한다. 좀더 심각한 문제는 그의 이러한 한계가 상당부분 서구적 보편성이나 근대주의에 대한 맹신이나 욕망에서 비롯된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는 곧 그가 ‘일본화된 근대’나 서구의 근대 자체에 대해 어느 정도의 ‘거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외형 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본판 오리엔탈리즘’에 매몰되었던 개조론자들과 같은 한계를 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가능성을 제한하거나 축소했다는 점은 결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물론 백남운의 한계는 서구의 근대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게 되는 문제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개인적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 아니 해방 후 한국의 사학계를 지배했던 ‘내재적 발전론’ 또한 서구적 보편성이나 근대주의에 입각해서 한국사를 재해석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한계는 아직까지도 쉽게 극복되기 힘든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보편사관이나 여기서 비롯된 과학적인 조선인식은 서구적 보편성이나 근대주의를 수용하더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으며, 오직 이러한 경우에만 보편사관이 조선이나 한국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준거틀일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일 수 있다.

Abstract

This Essay aims to reinterpret Baek Nam Hun(BNH)'s Universal Conception of History(UCH) in context of cultural history. Chosun had accepted the Western modernity(WM) through Japan. This WM would be 'Japanized Modernity'(JM) partially, and the latter was not unrelated to ‘Japanese Orientalism’(JO). Therefore, in the Process of Modernity-acception, Chosun was contaminated with JM or WM itself and accepted even 'Chosun's Staganation' (CS) as a product of JO(GaeJoron in 1920s), or overestimated the chosun's Past and Culture(excess nationalism; ChosunHak Undong in 1930s). However Both was the same paradox that their study setted out Problems of Chosun but resulted in absence or insufficnency of Chosun understanding. Therefore the Possibility of ChosunHak in process of Modernity-acception could be located in the place that Chosun secured the distance to JM or WM itself and escaped even the 'excess nationalism'. In this point, BNH was very Important Person in the History of ChosunHak. even though he setted out the critique against CS like ChosunHak Undong in 1930s, he showed the possibility of escapeng the 'excess nationalism' and overcoming the Japan's Colonialism Ideology relied upon Marxism UCM. But he revealed the problem that was ignored or could not be explained the speciality of Chosun by the eliminating the difference of Chosun and Japan, even though he succeded in Periodic task of overcoming the Japan's Colonialism Ideology. In the post-liberation, he stressed the speciality of Chosun and was making progress toward the possibility of ChosunHak, but reduced that possibility through reintroducing the UCM. Therefore his 'scientific Chosun understanding' succeeded in securing science only, but did not succeeded sufficiently in Chosun understanding. This fact meaned that he was a paradox that his study setted out Problems of Chosun but resulted in absence or insufficnency of Chosun understanding. This paradox could not explained perfectly, but could be partially the result of desire for Western Universality or modernism. Whether this view is accepted or not, it can not denied that he did not succeeded in securing the distance to JM or WM itself. I think that this problem provides a very important lesson constan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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