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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태조-세종대 고려대장경의 인경과 그 의의

Printing of the Tripitaka Koreana and its Significance from Taejo to Sejong in the Early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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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고려 재조대장경은 13세기 조성된 이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경은 약 20여 회이다. 이 가운데 조선시대는 전체 7회이지만 4회가 조선초기인 태조-세종대에 이루어졌다. 태조대 1393년 대장경 인경은 태조와 왕실, 관료의 발원으로 개경 연복사 오층탑전에 봉안키 위한 것이었다. 1393년 3-6월 무렵에 인경을 완료하고 연복사 오층탑에 봉안하였다. 고려 개창 이래 개경 도성 내 주요 사원인 연복사의 오층탑전을 중수하고 대장경을 봉안하여, 태조의 개인적 신불 이외 국가 창업의 공을 기리고 국리민복과 국가영세를 기원한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정종대 1399년 대장경 인경은 태조의 사재를 근간으로 국가의 지원을 통하여 이루어졌고, 조선 신도 한양의 흥천사 사리탑전에 봉안키 위한 것이었다. 흥천사는 1398년 태조가 신덕왕후의 원당으로 한양 도성 내에 창건하였고, 선종 최고 사원의 위상을 가졌다. 개경 연복사와 오층탑전의 전례에 준하여 사리탑전을 영조하여 1399년에 대장경을 봉안하였다. 태종대 1413년 대장경 인경은 1413년 3월 태종의 명으로 진행되었고, 태조의 재궁인 개경사에 봉안키 위한 것이었다. 태조의 5주기에 맞춰 개경사에 대장경을 봉안하고 대장경 전독 의례를 설행하여 명복을 기원하였다. 태종 13년 태조 재궁인 개경사에 봉안한 대장경은 태종의 효행적 불사라는 성격 이외 조선 개창조에 대한 불교적 추숭이라는 성격을 가졌다. 세종대 1440년에 인경한 대장경은 흥천사의 사리탑전을 중창하고 봉안하였다. 이는 조선 태조가 창건한 ‘조종 창건 사원’인 흥천사의 사리탑전을 중창하면서 대장경을 봉안하여 불법 가피를 통한 왕실 祝釐와 국리민복을 기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Abstract

Since the Tripitaka Koreana was engraved in the 13th century, Records show that the Tripitaka was printed about 20 times. There are a total of 7 cases in the Joseon Dynasty, but 4 cases were made from Taejo to Sejong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Tripitaka Koreana printed in 1393 was enshrined in the five-story pagoda of Yeonboksa in Gaegyeong at the wishing of Taejo, the royal family, and government officials. The printing of the Tripitaka was to commemorate the founding of Joseon together with King Taejo, the royal family, and officials, and to pray for the welfare of the nation and the people through Buddhist power. It is also meaningful in that it prayed for the end of war and national development. In 1399, during the reign of Jeongjong, the printing of the Tripitaka was accomplished through state support based on private materials at the wishing of Taejo. The Tripitaka Koreana printed in 1399 was enshrined in the Salitabjeon (舍利塔殿) of Heungcheonsa in Hanyang, Joseon. Taejo founded Heungcheonsa and Salitabjeon in Hanyang, the newly developed Joseon Dynasty, and enshrined the Tripitaka to pray for the royal family’s ancestral rites and national protection by Buddhist power. In 1413, during the reign of Taejong, the printing of the Tripitaka was carried out under the order of Taejong, and it was enshrined in Gaegyeongsa, the Palace for Memorial Ceremony (齋宮) of Taejo. The printing of the Tripitaka to be enshrined in Gaegyeongsa had the characteristics of Buddhist respect for the founders of Joseon besides the filial piety of Taejong. In 1440, during the reign of Sejong, the printing of the Tripitaka was to be enshrined in the Salitabjeon of Heungcheonsa. Sejong inherited the ideology of the founding of Heungcheonsa by Taejo, the founder of the Joseon Dynasty, and rebuilt Heungcheonsa’s Salitabjeon and enshrined the Tripitaka to enhance its status and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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