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6·25전쟁기 북한의 심리전 수행방식과 인적 심리전: 적군와해사업을 중심으로

The North Korea’s Enemy Army Deconstruction Project and Human Psychological Warfare in the Korean War: Focusing on tactics to break down the enemy forces

0

조회

0

다운로드

7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북한은 6·25전쟁 시기에 무력에 의한 군사작전과 함께 적군의 전의를 상실시키고 투항을 유도하기 위해 적군와해사업이라는 심리전을 전개했다. 조선인민군은 포로를 심리전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상정했고, 적군와해사업의 성과로 획득한 포로를 인민군에 편입시켜 직접 심리전에 투입했다. 그리고 적공조직과 포로를 활용해 최전선에서 삐라와 함화를 통해 적군을 투항시키거나 적군을 내부적으로 와해시키려 했다. 북한의 심리전은 미국의 심리전과 달랐다. 미국의 심리전 매체는 삐라·라디오·확성기였으며, 핵심 매체는 삐라였다. 그러나 북한의 적군와해사업 매체는 특수전·포로·삐라·함화였고, 핵심 매체는 포로였다. 미국은 심리전의 이데올로기를 라디오·확성기·폭격기 등 물적 자원을 통해 원거리에서 전파했지만, 북한은 심리전의 이데올로기를 포로·적공조원·전투원 등 인적 자원을 통해 최전선에서 전파했다. 결국 미국은 삐라를 중심으로 시각 심리전과 물적 심리전을 추진한 반면, 북한은 포로를 중심으로 대면 심리전과 인적 심리전을 추진했다. 북한 지도부는 심리전에서 적의 ‘투항’과 포로의 ‘인민화(人民化)’를 선험적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북한이 6·25전쟁 당시에 추진한 심리전은 휴전협상뿐만 아니라 정전협정 이후에도 국군포로 문제와 납북자 문제를 발생시킨 근본 원인 중 하나였다.

Abstract

At the time of the Korean War, North Korea launched a psychological warfare called the “Enemy Army Deconstruction Project” along with military operations by the military forces. The North Korean Army(NKA) set the prisoner of war as the subject, not the object of a psychological warfare, and incorporated the Korean prisoners of war into the NKA and put them into the psychological warfare. And they planned to surrender or destroy the enemy forces internally through the psychological leaflets and slogan at the forefront. North Korea’s psychological warfare was different from that of the US army. The media in the US army’s psychological warfare were psychological leaflets, radio, and speakers, and the core medium was psychological leaflets. However, the media in North Korea’s enemy army deconstruction project were prisoners of war, psychological leaflets, slogan, and the core medium was prisoners of war. Whereas the US army spread the psychological warfare ideology remotely through physical resources such as radios, loudspeakers, and bombers. However, North Korea propagated the ideology of psychological warfare at the forefront through human resources such as prisoners of war and combatants. In the end, the US army promoted visual and physical psychological warfare, while the NKA promoted face-to-face psychological warfare and human psychological warfare. The North Korean leadership claimed that the enemy surrendered itself during the psychological warfare and that the prisoners voluntarily joined the NKA. Therefore, the psychological war that North Korea promoted during the Korean War was bound to create prisoner of war and abductee issues even after the armistice was signed.

참고문헌 (52)

  1. 국사편찬위원회, "비전향장기수구술1 : 최하종" (2006), 국사편찬위원회
  2. 김기도, "정치선전과 심리전략" (1989), 나남
  3. 대한적십자사 인도법연구소, "제네바협약과 추가의정서" (2010), 대한적십자사 인도법연구소
  4. 李健一, "中國共産黨의 人民軍隊 統制論" (1998), 다다미디어
  5. 조성훈, "6·25전쟁과 국군포로" (2014),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 합동참모본부, "합동·연합작전 군사용어사전" (2003), 합동참모본부
  7. Rosemary Foot, "A Substitute for Victory: the political of peacemaking at the Korean armistice talks" (1990), Cornell University Press
  8. 김민서, "현행 1949년 제네바협약과 대한민국-6·25전쟁 포로문제를 중심으로", 인도법논총, (29), pp.73~99 (2009)
  9. 김선호, "6․25전쟁기 북한 심리전의 체계와 인적 자원", 동방학지, (192), pp.175~206 (2020), 국학연구원[DOI]
  10. 김영희, "한국전쟁 기간 삐라의 설득커뮤니케이션", 한국언론학보, 52(1), pp.306~333 (2008), 한국언론학회
  11. 서홍석, "북한 농업협동화 시기 제대군인의 활동과 농업협동조합의 공고화", 韓國史學報, (74), pp.375~418 (2019), 고려사학회[DOI]
  12. 이윤규, "6·25전쟁과 심리전: ‘들리지 않던 총성, 종이폭탄! 삐라’를 중심으로", 한국근현대미술사학(구 한국근대미술사학), (21), pp.130~148 (2010),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13. 정용욱, "6·25전쟁기 미군의 삐라 심리전과 냉전 이데올로기", 역사와 현실, (51), pp.97~133 (2004), 한국역사연구회
  14. 정용욱, "「6·25전쟁기 미군의 심리전 조직과 전개양상", 한국사론, (50), pp.369~404 (2004)
  15. 조성훈, "한국전쟁 중 공산측의 유엔군 포로정책에 대한 연구", 한국근현대사연구, 6, pp.217~266 (1997)
  16. Choi, Yong-Seong, "한국전쟁시 미군의 전술심리전 효과분석", 군사, (50), pp.233~256 (2003),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17.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 Forces, "Your Families Need You Back!",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 Forces, ~ (1952)
  18. The Korean People’s Army and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Are You Really Fighting For Freedom?", The Korean People’s Army and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 (1951)
  19. 고려서림, "北韓解放直後極秘資料 6권" (1998), 고려서림
  20. 문화선전성, "선전자 創刊號" (1949), 문화선전성
  21. 사단 정치부장, "방어전투말 휴식기간에 각구분대 초급적공와해사업일꾼들의 사업진행계획표", 사단 정치부, ~ (1951)
  22. 사회과학출판사, "조선말대사전 2권" (1992), 사회과학출판사
  23. 一○九部, "喊話手冊(聯隊敎材)", 兵團本部, ~ (1952)
  24. 제1집단군 정찰부 박병남, "포로병 접수증", 제1집단군 정찰부, ~ (1950)
  25. 제235군부대 문화부대장 최봉철, "지령: 포로살상 엄금에 대하여", 제235군부대 문화부, ~ (1950)
  26. 제2대대 선동원 허경룡, "적공사업에 대한 월말보고", 제2대대, ~ (1951)
  27. 제327군부대 정치부장 김강, "지령: 적군와해사업을 강화할데 대하여", 제327군부대 정치부, ~ (1951)
  28. 로형종, "적공사업 총화보고서" (1951), 제3대대 정치부
  29. 제655군부대 정치부 적공지도원 대리 고재선, "482군부대 정치부 적공지도원 동지 앞", 제655군부대 정치부, ~ (1951)
  30. 제655군부대 정치부, "부대전투원들의 적군와해사업을 기일층 강화할데 대하야", 제655군부대 정치부, ~ (1951)
  31. 제655군부대 정치부, "적공사업 및 해방전사에 대한 몇가지 보고 제출에 관하여", 제655군부대 정치부, ~ (1951)
  32. 제825군부대 정치부 선동원 김병기, "근위六師 정치부장 동지 앞", 제825군부대 정치부, ~ (1951)
  33.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선전선동부, "<강연자료> 현대전쟁에 있어서의 경제적 요인에 대하여" (1951), 총정치국 선전선동부
  34.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영어함화집" (1951), 총정치국
  35. 조선인민군, "“국군” 장교들의 거짓말에 속지말라!", 조선인민군, ~ (1952)
  36. 조선인민군, "Whom are you fighting for?", 조선인민군, ~ (1952)
  37. 조선인민군, "포로심문서", 조선인민군, ~ (1950)
  38. 조선인민군, "함화집", 조선인민군, ~ (1950)
  39. 조선인민군, "리승만 괴뢰군 장병들이여", 조선인민군·중국인민지원군, ~ (1953)
  40. 조선인민군, "누가 당신을 집에 돌아가 설을 못쉬게 하는가?" (1951), 조선인민군·중국인민지원군
  41. 조선인민군사령부, "安全通行證" (1953), 조선인민군사령부·중국인민지원군사령부
  42. 김책, "명령 제84호: 적군 포로취급에 대하여" (1950), 조선인민군전선총사령부
  43. 조선인민군총사령부, "미 제국주의자들과 리승만역도들의 전쟁 도발1주년에 재하여 “국방군” 전체 장병들에게 격함" (1951), 조선인민군총사령부
  44. 中國人民志願軍 政治部, "<中英對照> 戰場喊話與簡單用語", 中國人民志願軍 政治部
  45. 中國人民志願軍 第六十四軍司令部, "英語學習手冊" (1951), 中國人民志願軍
  46. 中國人民志願軍 第六五部二排, "戰場喊話用語" (1951), 中國人民志願軍
  47. 中國人民志願軍 第一九一師政治部, "對美軍喊話口號" (1951), 中國人民志願軍
  48. 중국인민지원군사령부 발, "중국인민지원군은 포로를 관대하며 죽이지 않고" (1951), 중국인민지원군사령부
  49. 참모장 태주혁, "정찰지령 No.8", 제3157군부대 참모부, ~
  50. 八○二部, "喊話手冊(供聯隊敵工小組用)" (1952), 兵團本部
  51.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한국전쟁기 삐라" (2000), 한림대학교
  52. 항공사단 검찰소, "심사원사업지도서" (1950), 항공사단 검찰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