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一論心記>의 창작방법과 서사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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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오일론심기>는 필사본의 제목 하단에 기록된 바와 같이 具龜年이 지은 작품이라는 데는 異論이 없다. 그는 영조 28년 (1752 A.D.)에 仁川 朱岸에서 출생하였다. 具龜年의 생애를 통해 볼 때 그는 초년과 중년에는 인천 주안에서 살았고 만년에는 인천에서 조금 떨어진 龍遊島에서 속세와 절연한 채 저작 생활로 여생을 보냈다. 작자는 풍진세상이 싫어 용유도를 찾아가 그곳에서 마지막 생을 마쳤다. <오일론심기>에서 文房四友와 硯滴이 자기들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 세태를 비분강개한 어조로 譏刺하는 내용으로 보나 수사법으로 미루어 볼 때 작자가 만년에 세상사를 등지고 용유도에 살면서 쓴 작품으로 짐작된다. 현재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필사본의 지질이나 묵질 등을 참작하여 창작 연대를 추정해 본 결과, 필사본 <오일론심기>의 표지는 格子 무늬와 菱花 무늬가 분명하게 들어나고 있다. 또한 본문 내용을 필사한 韓紙의 紙質이 닥종이로써 搗砧되어 있고, 墨質이나 종이 발폭이 18세기 초중간의 것으로 보이는 점과 작자의 생존 시기 등으로써 이 작품의 창작 시기를 작자 具龜年이 만년에 용유도에 살았던 18세기 말엽 전후에 창작한 것이라 생각된다. <오일론심기>의 창작방법은 문방사우와 연적을 의인한 北溟豪士[먹의 의인], 紫潭居士[벼루의 의인], 黑頭公[붓의 의인], 浩塘主人[종이의 의인], 天一翁[硯滴의 의인] 등 五友의 悲憤慷慨한 심사를 몽유소설의 액자 속에 擬人과 寓意의 기법을 답습하여 창작한 것이다. 따라서 文房四友와 硯滴을 의인한 의인소설의 기법을 빌어 그 속에 문방사우와 연적을 의인한 五友의 悲憤慷慨의 吐說을 寓意를 통해 이들의 공적을 세상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이 이 작품의 창작의도이고 작자의 서술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일론심기>는 몽유소설의 액자구성에 문방사우와 연적을 의인한 의인소설과 寓意의 技法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때문에 <오일론심기>는 이들 세 가지의 기법을 한 작품에서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몽유소설이면서 의인소설이고, 우의소설 또는 우화소설이라 할 수 있어, 한국문학 특히 한국 소설문학사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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