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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장 ⸱ 감 ⸱ 성 - 3.1운동을 통해 드러난 장 ⸱ 감 ⸱ 성 선교사들의 정교분리원칙

The March 1st Movement and Presbyterian‐Church. Methodist‐Church and Holiness‐Church ―The Principle of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of foreign missionary in Korea revealed through the March 1st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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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독교신학

초록

본 연구는 삼일운동 당시 주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를 규명해 내는 작업이다. 주한 선교사들의 정교분리 원칙이 '반민족적인 행동인가?' 혹은 '개인 도덕영역으로 기독교의 정의를 축소시킨 장본인인가?'란 문제에 본 연구는 주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정교분리의 원칙을 다각도로 판단해야 할 것을 밝히고 있다. 3.1운동 당시 주한 외국인 선교사들은 선교지인 조선에 하나님의 정의가 바로 세워지기를 소망했고, 무엇보다도 일제 만행에 대한 한민족의 아픔과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정교분리원칙은 절대적인 원칙이 아니었다. 주한 외국인 선교사들은 이미 3.1운동 이전에 있었던 ‘춘생문 사건’과 ‘105인 사건’에서 그들의 세웠던 정교분리원칙과 상관없이 조선의 정의와 자유를 위해서 노력했던 모습이 나타났다. 이러한 모습은 3.1운동 당시에도 이어졌으나, 반면 정교분리원칙을 고수했던 면도 동시에 나타났다. 그 이유는 첫째, 3.1운동 개입에 대한 일제의 의심에서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이고, 둘째, 일제의 의도, 즉 선교사들을 이용해서 계속 일어나는 만세시위를 중단시키려는 의도에 협조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일제총독부를 맞서는 전략은 바로 정교분리원칙을 고수하는 것뿐이었다. 그리하여 선교사들은 일제당국과의 비밀회담에서 일제의 한국지배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비난함으로 정치적인 조언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에는 일제의 만행을 적극적으로 알려 정교분리원칙에 매여 있지 않았던 양면적 모습이었다.

Abstract

This study is to reveal how the principle of ‘segregation of church and state’ of foreign missionaries in Korea during ‘the March 1st Movement’ were applied and how today the principle can be evaluated. On the question of whether the principle of ‘segregation of church and state’ is anti‐nationalism or whether this principle reduce Christian justice to individual morality, this study proves that this principle should be judged in two aspects. At the time of the March 1st Movement, foreign missionaries in Korea wanted to establish God's justice right in Korea, the mission field, and, above all, deeply sympathized with the pain and suffering of the Korean people against Japanese atrocities. For them, the principle of ‘segregation of church and state’ was not an absolute principle. Foreign missionaries in Korea had already worked for the justice and freedom in Korea, as seen in the “Chunsaengmun affair” and the “105‐man incident” before the March 1st Movement. Likewise during the March 1st Movement, they were not bound by this principle. However, it also appeared to adhere to this principle at the time of the 3.1 Movement. The reason for this was, first, to avoid Japanese suspicions that missionaries are involved in the March 1st Movement, and second, not to cooperate with Japan’s intention, that is, to stop the protests through the help of missionaries. For them, the only strategy against the Japanese Governor, which is increasingly threatening over time, was to adhere to this principle. For this reason, the missionaries not only made political statement that Japan misrules Korea, but also actively informed their country of the atrocities of Japanese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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